사할린 동포가 파주시민이 되다

멀고도 가까운 새 이웃, 사할린  동포 이야기


파주시와 관련되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온 파주 중앙도서관은 올해 특히 의미 있는 사업 하나를 추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이주했던 한인 동포의 삶과 애환을 기록하여 그분들의 정주의식을 북돋기 위한 사업이 그것이다.

<파주중앙도서관의 사할린동포 기록사업>


파주시에는 현재 2009년부터 영구 귀국한 140여 명의 사할린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부분 1940년대 전후로 출생한 고령층이다. 예전엔 멀고도 멀었지만, 지금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 된 어르신들이다.   주민등록증을 받은 이들은 사할린동포가 아닌  진짜  파주시민이 된 것 같아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과 2012년 그리고 2013년에 걸쳐 파주에 둥지를 튼 분들로 문산의 당동과 선유리 등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

파주시는 이들의 순조로운 정착을 돕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협력하여 우정마을 행복학습관 등을 만들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우정마을 행복학습관은 50세대 102명의 사할린 어르신이 제1진으로 2009년 12월 4일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문산주공 3단지)에 영주 귀국하여 정착하게 됨에 따라, 사할린 어르신들의 안정적 사회 적응과 기존 어르신들과의 화합을 돕기 위해 경로당을 리모델링 하여 2011년 1월 25일에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일반프로그램(한국어교실, 손뜨개교실, 미술교실, 실버보드게임, 건강체조 등)이 개설되어 있고, '인생드로잉북' 등의 특별 수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정마을 행복학습관(문산읍 당동리)>


일제의 폭압으로 1938~1945년간에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조선인은 15만여 명에 달한다. 그중 10만여 명은 1944년 일본 규슈 탄광으로 끌려가 이중 징용을 당했다. 그 뒤 해방을 맞이했지만 사할린에 방치되다시피 했던 조선인은 약 4만3천여 명이다.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국적도 잃었다. 대부분 무국적자로 방치된 조선인들은 취업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소련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 1989년에서야 대한적십자사의 영주귀국 사업으로 남한(한국)국적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영주귀국 사업을 통해 한국 동포들이 남은 여생을 고국에서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속적인 방문 지원 사업을 실시, 가족들과의 만남 등도 추진하고 있다. ‘영주귀국사업’, ‘일시 모국방문사업’, ‘귀국자 역방문사업’, ‘2-3세 모국방문사업’ 등이 그것인데 대표적인 ‘영주귀국사업’에서는 사할린 동포들이 여생을 고국에서 보낼 수 있도록 국적 취득 및 각종 생활정착 지원을 통해 영주귀국을 돕는다. 현재 파주시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할린 동포들 역시 이 대한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약칭 사할린 동포법으로 불리는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20년에 제정됨에 따라 더욱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토태가 마련되었고,  파주시에서도 2023년 「파주시 영주귀국 사할린한인 주민 지원에 관한 조례」를 지정하여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2년 10월 사할린 영주 귀국자 77명이 최초로 입국하여 춘천 사랑의 집에 입주하게 된 이래 현재 영주 귀국자는 4,408명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주거시설에서 머물고 있고, 그중 140여 명이 우리 파주 시민으로 지내고 있다.

이분들의 망향 의식은 여전하고 남다르다. 특히 북쪽이 고향인 이들은. 그러한 심정들을 배려하여 임진각의 망배단에서는 추석이면 제례도 열린다.

<임진각 망배단 추석 차례(2018.10)>


특히 이들의 명절 음식은 사할린에서의 그것과 북쪽 음식, 그리고 남한 음식의 복합판이다. 고향과 머물던 곳들의 흔적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명절이면 가장 그리워지는 것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피붙이와 친인척들에 대한 생각이다. 이분들이 연말 모임에서 더욱 진한 정을 나누게 되고, 명절이면 같은 사할린동포들끼리 무릎을 맞대고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할린 동포 송년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 그것은 그분들을 잊지 않고 새 이웃으로 따뜻하게 계속 감싸고 챙겨드리는 일이 아닐까. 특히 명절날이면 더욱 허허로워질 그분들을 기억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온정이 언젠가는 오롯이 전달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던 초심을 잊지 말아야겠다.


[취재]  파주 알리미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