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파주를 다녀갔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정전 70주년을 맞아 인류 평화에 대한 문학적 담론 형성과 국내외 문화 예술인들의 국제적 연대 강화를 위해 개최한 ‘2023 DMZ 평화문학축전’이 10월 24일~ 26일에 걸쳐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렸다.

DMZ 평화문학축전 조직위원회(위원장 정도상) 주최로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 프랑스)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벨라루스)가 참석했다.

이들 외에도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나이지리아), 아동문학 작가 사마르 사미르 메즈가니(Samar Samir Mezghanni, 튀니지), 소설가 아다니아 쉬블리(Adania Shibli, 팔레스타인), 제주 작가 현기영 등 국내외의 여러 장르의 작가 49인을 초청하여 문학 포럼, 낭독 공연, 평화 선언을 위한 작가 회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주요 참여자들과의 기념 촬영. 중앙이 염태영 경기부지사. 그의 좌우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

특히 25일에는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가 함께한 가운데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과의 특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각각 2008년과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두 작가 르 클레지오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장벽과 차별을 넘어 생명과 평화로’라는 주제로 대담이 이뤄졌다.

염 부시자의 대담 진행 장면

대담 내용을 경청하는 참석자들

르 클레지오(1940~) 작가는 “풀들이 자라나는 파주를 보면 낙원 같지만, 아직 38선이 존재하고 현재 어디에선 전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이 위기의 시기에 문학이 폭력을 이길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몽상가들입니다. 언제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지요. 미래를 믿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는데, 이웃과 친구, 동료와 미래를 믿는 것이 문학입니다. 문학은 이 위기의 시기에 폭력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전쟁은 작가들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듭니다. 말을 하기는 쉽고, 행동하기는 어렵지만, 언제나 우린 평화로 가는 길을 쟁취해야 합니다. 작가들도 평화에는 '예'라고, 전쟁에는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부연했다.

르 클레지오는 200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1994년에 이미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한편 그는 2007~2008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2011.6 제주 세계7대자연경관 홍보대사, 2012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부문 심사위원을 거쳤을 정도로 한국을 잘 알고 사랑하는 친한파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제주 4·3의 비극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제주와 서울에 관한 소설들을 발표하는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번 행사에는 제주 4·3 유족들 일부도 초청되었다.

르 클레지오 작가

벨라루스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48~ ) 작가는 “푸틴은 전쟁의 희생자들을 단순히 통계 수치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통계가 아니라 진짜 사람들입니다.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요. 아이들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등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예술이 어려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길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매우 독특한 작가다. 저널리스트의 경력을 살려 새로운 장르인 이른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을 개척했다. 사람들의 인터뷰를 글로 옮긴 것인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 장르로 꼽힌다. 당시 그녀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다음과 같은 이유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다음(多音)의 작품을 써왔다. 저널리즘의 형식을 초월해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그것이 진정한 성취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첫 작품(1983)이면서도 초판 출간 당시 검열에 걸려 싣지 못한 내용을 끝까지 챙겨서 발간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개정판(2002)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

이들 외에도 이번 참가자 중 주목을 받은 작가가 있는데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다니아 쉬블린이다. 그녀의 소설 <사소한 일>(2017)은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 한 베두인 소녀가 이스라엘군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과 이를 좇는 여성이 겪는 일을 담았다. 2020년 전미도서상 후보와 2021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문학성이 인정된 소설이다.​ 그리고 2023년 10월 20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이 <사소한 일>에 수여하는 리베라투르상(LiBeraturpreis) 시상식이 열린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되고 말았다. 최근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로 인한 팔레스타인 반감이 일종의 연좌제로 작동한 탓이었다. 이 상은 제3세계의 독창적인 여류 작품에 주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오정희의 <새>가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이 프랑크푸르트 소동에 관한 소회에서 쉬블린은 이렇게 답했다: “비참함의 진부함 앞에서 글쓰는 자의 소명은 가로등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그렇다고 해도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처럼,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는 있을 겁니다.”

아다니아 쉬블린, 팔레스타인 작가

같은 날 진행된 문학 포럼은 3개 세션으로 운영됐는데, 기조 강연과 발제는 참여한 외국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토론에는 한국 작가들이 참여했다. 세션별로 주제와 참여자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가했음이 읽힌다.

제1세션: ‘지구의 위기와 작가의 역할’. 시인 니이 오순다레의 기조 강연. 시인 마카란드 파란자페(Makarand Paranjape, 인도), 문학비평가 마누엘 코르네호(Manuel Hernán Baeza Cornejo, 페루), 소설가 프리아 바실(Priya Basil, 독일) 등의 발제. 이수경, 오수연, 이문재, 전성태의 토론.

​제2세션: ‘전쟁, 여성, 평화’. 베트남 소설가 레 민 쿠에(Le Minh Khue)의 기조 강연. 리그라브 아우(Liglav A-Wu, 대만), 무키 라케스타(Mookie Katigbak-Lacuesta, 필리핀), 아다니아 쉬블리(Adania Shibli, 팔레스타인)의 발제. 김해자, 나희덕, 김세희의 토론.

제3세션: ‘상처에서 평화의 섬으로’. 오시로 사다토시 일본 작가(Sadatoshi Oshiro)의 기조  강연. 제주 작가 김수열 시인의 발제.

‘한반도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별도의 세션도 열렸다. 이정, 박덕규, 고명철, 이상숙 등의 국내 작가들만 참여하여 우리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이 행사는 그 명칭답게 축전(祝典) 형식도 가미되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작가들은 물론이고 파주와 떨어져 지내온 국내 작가들에게도 손님 접대의 차원에서 흥겨운 축제의 기분을 일부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손님 접대용 소리와 춤사위의 한바탕 공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70년이라는 가장 오랜 정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불변의 비무장지대(DMZ)를 분단의 실물 상처로 끌어안고 지내 왔다. 그 DMZ의 상징이기도 한 접경 지역을 파주는 품고 있다. 그런 파주에서 벌어지는 DMZ 행사에서 요즘 빠지지 않는 것이 그 DMZ를 잊지 않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DMZ 철조망에의 소망 리본 달기’다.

DMZ 철조망에 소망 리본 달기를 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

일반 참가자들

‘DMZ 평화문학축전’에서도 이 행사는 빠지지 않았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의 1층 서가 앞으로 옮겨져 걸린 DMZ 철조망에 르 클레지오를 필두로 참가자들의 기원 리본이 매달렸다. 참가자들의 기원대로 어느 땐가는 반드시 이 DMZ 철조망도 이제는 기념품으로만 기억되는 베를린 장벽의 벽돌처럼 고유한 역할이 박탈된 역사적 유물로 전락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끝>

[취재] 파주알리미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