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과 민통선 마을

한반도의 남북 분단 비극이 만들어낸 것 중에는 비무장지대(DMZ) 외에 민통선이라는 것도 있다.

​민통선(民統線)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의 준말로 한반도 비무장 지대의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km미터의 거리를 동서로 잇는 선을 뜻한다. 즉 비무장지대 밖의 남쪽 지역이지만 군사 목적상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우리 땅을 말한다.

민통선 마을이라 불리는 특수 지역이 있다. 민통선 안에 특별히 자리 잡은 마을들을 뜻하는데 접경지역인지라 특별한 허가 절차를 거쳐 조성된 곳들이다. 이 민통선 마을은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여 ‘59년도부터 ’73년까지 건설되었고 한때 100여 개까지 조성되었지만 민통선이 점점 북방으로 옮겨지고 남북간 체제 경쟁이 약화됨에 따라 점차 해제되어, 현재는 경기도에 4개소(파주에 3개소, 연천에 1개소), 강원도에 16개소 등 총 20개가 남아 있다.

이 민통선은 아래의 경기개발연구원(박은진 연구원)의 추적 연구 자료에서 보이듯 3차에 걸쳐 북상하여, 초기에는 군사분계선 이남 20~40km로 광폭이던 것이 현재는 군사분계선 이남 5~10km로 대폭 좁혀졌다. 그만치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이 줄어들었다.

민통선 북상 조정 현황  [출처: 경기개발연구원 자료]

파주에는 민통선 내 마을이 세 개 있다. 판문점의 대성동 자유의마을, 통일촌(군내면), 해마루촌(진동면)이 그것이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중 가장 마지막으로 조성된 막내 마을 해마루촌이다

해마루촌은?

해마루촌은 통일대교를 건너서 들어가면 나오는 통일촌의 오른편 쪽이다. 통일대교를 지나서 꽤 더 들어가는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있다. 휴전선으로부터는 남방 6.4km, 남방한계선으로부터는 4.4km 지점이다. 그처럼 북과 지근거리에 있음에도 특별한 긴장감은 없다. 그저 한적한 시골 마을일 뿐이다.

해마루촌의 위치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통일촌 오른쪽에 해마루촌이 있다. [출처: 파주시 해마루촌 홍보 자료]

해마루촌은 주민들이 동파리(東坡里)를 우리말로 재해석해 '동(東)'은 '해', '파(坡)'는 언덕을 뜻하는 '마루'로 보고서 지은 이름이다.

동파리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급히 의주로 피란하면서 쓰디쓴 추억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초평도를 건널 때 마땅한 배조차 없어서 주민들이 널(板) 문짝(門)을 뜯어서 급조한 것을 타고 건너는 바람에 오늘날의 판문점 명칭을 생산하기도 했는데(훗날 일제 때 행정 지명을 부여하면서 널문리[판문리]의 위치가 오늘날의 판문점 서쪽으로 이동했다. 2년 넘게 끈 6.25정전협정이 최초로 열렸던 곳이 그 널문리였고, 판문점은 그 뒤로 옮긴 곳의 명칭이다), 강은 건넜지만 임금이 머물 곳 하나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서 승정(丞亭.나루터 관리 관사)까지 뜯어서 태우며 몸을 녹여야 했다. 그 당시 임금을 마중 나온 장단부사 등이 수라를 준비했지만, 그것을 군사들이 다 훔쳐먹어 없앴다고 징비록은 적고 있다.

흔적뿐인 동파리역. 관사까지 뜯어 태운 탓인지 남아 있는 것은 이처럼 흔적뿐이다.

대성동 자유의마을은 1953년의 정전협정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조성됐고, 통일촌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꾸려졌다. 하지만 해마루촌은 1998년부터 조성되어 2001년에 분양을 마친, 겨우 22살이 된 가장 막내다.

1998년 파주시는 6·25 이후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장단군 고향 실향민 1세대 5000여 명과 원거리에서 출입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2000여 명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887 일대 10만777㎡ 부지에 들어선 60가구 규모의 정착촌은 2000년 기반 조성을 완료하고 2001년 분양됐다. 당초에는 장단 지역 출신으로 민통선 안에 일정 면적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사람에게만 입주가 허락됐지만, 지금은 입주 자격 제한이 없어졌다.

이 해마루촌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장단군 출신의 실향민을 대상으로 조성된 정착촌이다. 즉 통일이 돼야만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다른 실향민들과 해마루촌 주민들은 다르다. 해마루촌은 6·25로 고향을 잃은 장단군 주민들이 50년 만에 되돌아온 고향이다. 그래서 입주 당시만 해도 해마루촌은 동파리 수복마을이라고 불렸다.

마을 입구와 곳곳에 세워져 있는 마을 이름판.

해마루촌은 얼마 전 '높은음자리표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마을 배치를 위성 지도로 마치 높은음자리표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구글의 위성 지도로 보면 마을 전체가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돼 있다. 처음부터 기획 촌을 구상하여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서 주택들을 대하면 마치 유럽의 어느 마을에 들어선 듯만 하다. 외양이 깔끔하고 유려하다.

해마루촌의 주택

해마루촌의 주택

해마루촌의 주택들. 서구식 외양을 뽐낸다.

마을 자체가 1세대 실향민을 대상으로 조성된 만큼 고령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주말에만 마을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 현재 145명 정도가 마을에 실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100여 명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라고 한다. 이에 따라 관광·숙박업(민박)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젊은 주민들을 마을로 다시 끌어오겠다는 것이 해마루촌의 전략이다.

해마루촌에서는 30%에 가까운 20여 가구가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이 밖에 시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은 15가구(젊은층 중심), 주말에만 민통선에 들어와 농지를 관리하는 가구도 15가구 정도인데, 농사 작물로는 콩의 인기가 높다. 토지가 오염되지 않고 비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에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것도 시급하다. 또한 콩국수 전문점 등 근린생활시설들이 마을에 추가로 조성되면 일거리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해마루촌 부지의 용도 변경(주거 용지→근린생활용지)이 시급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해마루촌의 생활 편의 시설은 식당(1개소)·교회(1개소)·마을회관(1개소)뿐이다. 병원과 학교도 없다. 대형 마트는 물론 그 흔한 편의점도 없다. 필요할 때마다 민통선 밖에 나갔다 와야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고향을 되찾은 기쁨이 더 크고 여전해서다.

초평도와 장산전망대

저 위의 지도에서 보듯 해마루촌은 초평도 바로 위쪽에 있다. 즉 해마루촌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임진강 속의 섬 하나가 초평도다. 이 초평도에는 겨울철이면 진객들을 대할 수 있다. 재두루미와 흰꼬리수리 같은 희귀 철새들이 날아온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 초평도에 진입하기는 곤란하다. 개인의 사유지이기도 하지만 매설된 지뢰가 전부 제거되지 않은 채로라서다. 그러므로 초평도의 철새 사진 촬영에는 망원렌즈 지참이 필수다.

초평도를 가장 편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아래 지도 속의 장산전망대(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산2-3)다.

장산전망대 위치

이 장산전망대에 오르면 눈앞에 임진강이 펼쳐진다. 장산전망대는 평화누리길 걷기 8코스이기도 한데 장산전망대에는 초평도 안내판도 세워져 있고, 거기에는 초평도를 ‘들풀섬’으로 풀이하고 있다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풍광. 사진 오른편이 초평도

이 장산전망대를 둘러싸고 있는 풀밭 지역은 수도권 내에서 밤하늘의 별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관찰되는 노지 캠핑의 최적지 중 하나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일반인 접근 금지였으나 파주시 요청으로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차량 진입 불가로 주차나 차박은 허용되지 않고 아래에 주차하고 올라가야 한다. 10여 분 정도만 걸어도 정상에 이른다.

전망지 아래에 펼쳐진 풀밭. 노지 캠핑의 적지로 꼽힌다.

해마루촌 일대는 분단 이후 60년간 출입이 제한된 까닭에 자연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된 '생태계의 보고'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주변으로는 임진강이 분단의 상처를 보듬고 에돌아 흐른다.

해마루촌은 군부대의 통제 구역이므로 마을에 들어가려면 사전 허가가 필수다.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으면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거대한 펜션 단지에 들어선 것처럼 형형색색 이국적으로 꾸며진 집들이 손님을 맞는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유럽풍 가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정경이다. 해마루촌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제203호인 재두루미가 날아들며 마을 앞은 쇠기러기의 서식처다. 검독수리 등 희귀조도 관찰된다. 해마루촌은 환경부가 지정한 자연생태우수마을이다.

해마루촌에 들른 뒤 장산전망대에 올라 초평도를 살펴보는 건 덤이다. 그참에 노지 캠핑의 적지 하나를 리스트에 올려놓을 수도 있고. 해마루촌 인근에는 최근에 발견된 허준 선생의 묘역이 있으며, 나오는 길에는 임진각과 황희 선생의 유적지인 반구정 등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하루의 나들이로는 꽉 차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고도 남는다.

*취재: 파주알리미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