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부승지 조원의 묘

 단장을 마친 ‘혜음원지 방문자센터’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임천조씨(林川趙氏) 묘역이 건너다보였다. 그중 맨 아랫단에 우뚝 선 커다란 묘비 하나가 또 기이하게 마음을 잡아당겼다. 궁금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올라가본즉, 2017년 4월에 조성된 묘비의 사연이 적잖이 애틋하다.

승정원동부승지 조원 묘비

이름은 이숙원(李淑媛) 호는 옥봉(玉峯)으로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선조 때 옥천군수를 역임한 이봉의 딸이며 운강공(雲江公) 조원(趙瑗)의 측실이다. 우리 가문에 현존하는 [가림세고](嘉林世稿) 부록에 옥봉의 시 32수가 수록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현세에도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인이다. 운강공과 옥봉의 만남도 예사롭지 않지만 별리의 과정이 애처롭고 생몰연대 역시 불분명하여 죽음의 과정 또한 알 길이 없다. 다만 중국의 어느 바닷가에 시편(詩篇)을 몸에 감은 시신이 떠다녔다는 이야기만이 설화처럼 전해져 오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옥봉할머님을 추모하고자 운강묘 아래 이 비를 세운다.

후손들이 조상의 측실을 기려서 시체 없는 묘를 만들고 묘비를 세운다니, 예사로울 수 없는 일이었다.
이옥봉의 시편들은 절실하고 절박하여 심금을 잡아끄는 맛이 진하다.

옥봉 묘비 측면

옥봉 묘비 후면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夢魂)

요사이 안부를 묻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달에 비친 사창에는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속의 넋에게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문 앞 돌길은 닳아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꿈속의 넋)

남편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시다. 만일 사람의 넋이 흔적을 남기며 다닐 수 있다면 임을 향한 혼백은 수백 아니 수천 번이라도 대문 앞을 들락거려 문 앞의 돌이 닳아서 모래가 되었을 것이란다.

옥봉 묘비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오신다고 해놓고 어찌 이리 늦으시나요
뜰에 핀 매화도 시들려고 하네요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려와
부질없이 거울보고 눈썹을 그려보네요

옥봉은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당시는 적서의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을 흠모했다. 조원은 효성이 지극하고 자손의 교육에는 엄격한 성품을 지녔다. 옥봉은 그의 첩이 되려고 했으나 조원이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옥봉의 아버지 이봉이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게 된다. 조원은 장인의 청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옥봉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조건을 달았다. 앞으로 시를 짓지 않을 것.

옥봉의 가묘와 묘비가 있는 묘역

그렇건만 그녀의 시 한 편이 관가의 판결에 영향을 주는 파란이 일어난다.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억울하게 파주 관아의 옥에 갇혔는데, 옥봉이 그 억울함을 밝히는 시를 지어 보냈고, 시를 읽은 파주목사가 산지기를 풀어줬던 것.
이 사건은 치명적인 비극의 빌미가 되었다. 남존여비, 적서의 차별이 심한 당시에 첩이 시를 짓고 관아에 청을 넣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엄격한 사회제도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조원은 시를 짓지 않기로 한 조건을 들어 옥봉을 내쳤다.

임천조씨 묘역

임천조씨 묘역

平生離恨成身病
酒不能療藥不治
衾裏泣如氷下水
日夜長流人不知 (離恨)

평생동안 이별의 한으로 병이 들어
술이나 약으로도 다 소용이 없네
이불속 눈물은 차디찬 얼음장 밑의 물 같고
밤낮을 울어도 그 누가 알아주나 (이별의 한)

조원의 묘

옥봉의 기다림과 원망이 전해졌던 것일까. 자신이 내쳤음에도 조원은 그의 문집 [가림세고] 부록에 옥봉이 남긴 시편들을 묶어두었으니 말이다.

취재 : 파주알리미 강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