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꾸준히 소개해 왔듯이 파주에는 명품 진품들이 은근히 많다. 그중 음악 감상 분야에서도 손꼽혀 왔던 게 파주 문산 출신으로 명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던 황인용(83) 씨가 헤이리마을에 건립한 음악감상실 겸 카페인 <카메라타>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새롭게 눈길을 끄는 명품이 그 길 건너 인근에 또 하나 더 생겼다. 규모나 장비 등에서 <카메라타>를 압도하고 남는다. 개인이 조성한 LP 음악감상실로는 세계 최대로 꼽히는 <콩치노 콩크리트>(Concino Concrete)가 그것이다.

콩치노 콩크리트의 외경

 

헤이리마을 건너편,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161번길 17 

(☎0507-1374-5800)

 

라틴어 콘치노(Concino)는 ‘노래하다, 연주하다, 화합하다’라는 뜻인데, 설립자 오정수 원장은 음악관 건물의 내외를 구성하는 콘크리트의 생활 발음과 어울리게 <콩치노 콩크리트>로 살짝 비틀어 ‘노래하고 연주하고 화합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으려 했다고 한다.

놀라운 장비와 규모, 좌석 배치의 특징

멀리서도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나는 지상 4층 건물 826.45㎡(약 250평)로 조성된 규모와 배치가 놀랍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를 맡았던 민현준 교수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지었다. 필로피 구조로 만들어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카메라타>에는 전용 주차장이 없어서 인근에 해야 한다) 2~3층은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복층 감상 구조로 살렸다. 음악은 현장감이 으뜸인데, 그걸 살리기 위해서 무대를 실제의 오케스트라단 배치 길이에 맞췄다. 복층 구조의 음악감상실이라는 점과 무대 길이를 콘서트홀의 그것과 같게 한 설계가 이곳의 특징이다.


이곳에서 놀라게 되는 으뜸은 장비다. 무대 전면에는 1930년대의 전설적인 명품들이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 3개와 독일의 문화재급인 ‘유로노 주니어’가 그것이다. 모두 억 소리가 나는 스피커들이다.

무대 전면

이 두 가지들은 그 당시에도 모두 최소 1500~3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극장에서나 쓰였다. 그중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 옆에 대형 나무판을 4각으로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유로노 주니어(Euronor Junior) 스피커는 전 세계에서도 희귀품이다. 독일의 물리학 박사인 칼 크뤼거와 콘스키 크뤼거 형제가 만든 유로노 주니어는 높이 3.5m, 너비 2.6m에 무게는 150㎏이나 되는 대형 스피커인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공습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물다. 오정수 원장은 우연히 독일 남부도시를 여행하던 중 한 극장에 설치된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를 발견했는데, 비싼 값을 치르고 한국으로 가져오려 하자 독일 당국이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출을 막았다.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는 무려 한 달이나 독일 공항에 압류돼 있다가 겨우 들여올 수 있었다고 한다.

유로노 스피커의 모양과 크기, 그 아래와 옆의 기기들과 비교가 된다

이것들은 모두 하도 커서 일반 건물의 창문을 통해서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 원장은 건물 시공 때 미리 반입해 두고서 창문 공사를 했다.


이곳은 또 1층의 객석이 모두 무대 정면을 향한 것과는 달리 2~3층은 무대와 각도를 달리하여 배치돼 있어서 음악이 감상자의 귀에 들려올 때 갖가지로 다르게 다가온다. 독서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고, 낮잠을 자도 된다. 다른 데서는 실례가 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자유가 허용된다. 음악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는 오 원장의 지론 덕분이다.


또 하나, 이곳에서는 뻥 뚫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임진강 주변의 멋진 풍광도 대할 수 있고 음악 관련 빈티지 포스터(모두 진품들) 전시도 대할 수 있다. 나아가 소중한 전시물들과의 피부 접촉도 가능하다. 그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동반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만약 파손할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임진강 풍광을 감상 중인 방문객들

음악을 들으며 임진강 풍광을 감상 중인 방문객들

빈티지 포스터와 실물 기기 전시품

빈티지 포스터와 실물 기기 전시품

이중생활자 오정수 원장


이것을 만들어 2021년 5월부터 개관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오정수는 현업이 치과 의사다. 월~금요일에는 서울에서 열심히 본업에 충실하고 주말에는 득달같이 달려와 DJ로 음악 속에서 지낸다. 그는 10대 시절 한때 방황하기도 했는데 그걸 극복하게 된 계기가 형이 사 준 워크맨이었다. 그 뒤 그에게 음악은 51%의 삶이 되었다. 돈이 생기는 족족 LP판을 샀고, 오디오를 마련했다. 오디오 기기의 하이엔드라는 마크 레빈슨, 골드문트, 자디스 같은 최고급 오디오 기기를 섭렵했다. 그가 말하듯 돈벌이의 90%는 오디오 장비 구입에 들어갔다. 음악인도 아닌 오 원장이 콩치노 콩크리트 같은 거대한 콘서트홀을 지은 것은 음악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빼어난 소리를 혼자 들을 게 아니라 넓은 공간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양평과 이곳을 저울질하다가 파주에서 맛나게 음식을 먹으면서 풍광도 즐겼던 게 떠올라 파주를 점찍었다.

오정수 원장

오 원장 못지않게 현재 이곳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부인도 실은 의외의 인물이다. ‘아시아의 인어’로 불렸던 전 수영 선수 최윤희의 언니이자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배영 은메달리스트인 최윤정 씨가 그의 부인이다. 동생 최윤희가 음악인 유현상과 결혼하려고 사찰로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듯이, 언니인 그도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오 원장과 결혼했다.

기타 이것저것

이곳의 음악은 모두 LP음악이다. CD도 틀어주는 황인용의 카메라타와는 다르다. 요즘 20~30대까지도 LP판에 관심하고 그 바람에 중고 LP가 고가에도 거래되는 세태와도 어울린다. 비유하자면 CD가 디지털 시대의 음악이라면 LP는 아날로그 음악 쪽이다. 소리가 날카로운 편인 CD에 비해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더 많이 나고 소리에 물기가 배어 있다.


이곳의 이용 시각은 주로 오후다. 평일은 오후 1시부터, 주말은 12시부터 연다(카메라타는 오전 11시). 음식물 반입 등은 일절 금지되고 입구에서 물만 가져갈 수 있다. 커피조차 팔지 않는 것은 수익성보다는 음악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실내에서는 당연히 금연이고, 동행과는 대화는 2층에서만 살살 할 수 있다. 카메라타에서는 동행과의 대화가 제지된다.


음량이 엄청나다. 처음에는 모두 깜짝 놀란다. 마치 영화관의 대형 아이맥스(eye-max)와 같은 이어맥스(ear-max) 음악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소리의 폭풍에 익숙해지면 작은 소리의 음악 감상에는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최상층의 오디오 전문가들에게는 초고음역대의 소리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초고음도 섬세하게 전해주는 3way에 익숙해서다. 이곳의 시스템은 1930년대식이서 2way로 유지되고 있다. 중저음 대역(우리 귀에 가장 친근한 음역)에서는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서도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고,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라고 말했다. 대형 콘서트 홀에서의 음악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기회를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