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케이블 방송임에도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드라마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그처럼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와 함께 뜬 나무가 있다. 이른바 ‘우영우 나무’로도 불리게 된 팽나무 한 그루인데, 극중에서 마을을 양분하는 신설 도로의 구역 결정 취소 소송에서 조연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이 나무는 실재하는데, 극중의 수도권 가상 동네인 소덕동이 아니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부리 102-1(동부마을)이 실제 주소다.


방송 후에 그 동네 주민들은 물론 나무까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동네 길은 외부 차량들로 막혔고, 찾아온 이들이 나무 주변 땅을 하도 밟아서 다져지는 바람에 나무까지도 가물에 시달렸다. 이 나무가 방송에서는 나중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도로 구역 설계 변경을 이끌어내지만, 실제로는 이미 2015년 7월 16일에 '보호수'로 지정된 몸이었다.

속칭 '우영우 나무'

파주시는 면적이 673.9 k㎡(203백만 평)인 광역 도시다. 서울(605.24k㎡)과 안양(58.5k㎡)을 합쳐도 파주가 조금 더 크다. 그만치 너르다 보니 당연히 나무도 부자다. 보호수만도 53그루가 있고, 경기도 기념물과 천연기념물로 받들리는 나무도 각각 1그루씩 있다.


파주 소재 보호수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보호수 전반에 관한 것들을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내가 살고 곳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내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보호수(保護樹, nurse-tree)란


일반적으로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나무들을 총칭하는데, 그 주된 선정 기준은 보호 가치와 수령(樹齡. 나무 나이)이다. 보호 가치가 매우 높으면 도 기념물 내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수령과 가치가 그보다 낮은 일반적인 수준이면 시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특별한 관리를 받는다.


그중 일반적인 보호수는 수령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진다. 현형 법규(산림보호법 13조. 보호수의 지정·관리)로는 수령이 500년 이상인 것은 도나무, 300년 이상은 시/군나무, 200년 이상은 읍/면나무, 100년 이상의 것은 마을나무로 지정·관리하는데, 통상적으로는 시/군나무로 통합 관리되고 있다. 파주의 경우는 파주 보호수 제00호 식으로 표기하고, 파주시 공원녹지과(☎031-940-4372)에서 총괄하고 있는데, 현재 54호까지 지정돼 있다.


보호수는 수령이 최소 100년 이상이 되는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중 보존 또는 증식 가치가 있을 때 지정된다. 법적으로는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老木), 거목(巨木), 희귀목(稀貴木 )등으로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핵심은 보존 가치다. 따라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후 나무가 태풍이나 인위적 손상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거나 고사하는 경우와 같이 보존 가치가 사라지면, 그 지정은 취소된다. 그 보존 가치에 따라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堂山木)·정자목(亭子木)·호안목(護岸木)·기형목(畸型木)·풍치목(風致木) 등으로 세분한다. 그중 동네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목(亭子木)이 가장 많다.


이 중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편인 명목(名木)과 보목(寶木)은 각각 '어떤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 등의 유래가 있어 이름난 나무이거나 성현, 왕족, 위인들이 심은 것으로알려진 훌륭한 나무'와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이 있는 보배로운 나무'의 경우를 뜻한다.

 [상세한 지정 요건 등은 다음의 산림청 자료 참조: https://www.forest.go.kr/kfsweb/kfi/kfs/cms/cmsView.do?mn=NKFS_03_14_05&cmsId=FC_003587]


보호수의 수령 추정에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수령 측정은 밑둥의 나이테가 가장 정확하지만 보호수와 같은 것을 훼손할 수 없어서,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한 ‘흉고 직경에 따른 노거수 수령 추정식’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로그 계산식까지 동원하는 함수인데, 그동안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노거수들을 대상으로 구축한 수령 추정용 패러미터 자료가 핵심이다.

파주의 대표 주자 두 분은 모두 물푸레나무다


파주에서 가장 귀하신 나무는 일찍이 천연기념물 제286호로(1982.11.9.) 지정된 무건리 물푸레나무(적성면 감골길 60. ☎031-940-5831)다. 널리 알려진 감악산 출렁다리에서 아래쪽으로 설마리 천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데 군 부대 관할 구역이어서 소유주는 국방부로 돼 있고, 관리를 파주시에서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물푸레나무의 위치

물푸레나무는 전국의 산야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보통 크게 자랐을 때도 높이가 3m, 직경 50cm 정도다. 하지만, 이 무건리의 물푸레나무는 높이가 무려 15미터 이상이고 매우 굵은 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일반적인 것들에 비해 5~6배 이상 큰 노거수(老巨樹)다. 그 당당한 위용이 전국 최고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의 물푸레나무 중에서는 가장 큰형님이다. 체구로나 위상으로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요 사유다.

무건리 물푸레나무[천연기념물]

아직도 튼실한 밑동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중 물푸레나무는 이곳 무건리 거목이 최초로 지정되었다. 그로부터 24년 뒤 경기 화성시 전곡리의 또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제470호(2006.4.4.)로 지정되어, 현재 천연기념물인 물푸레나무는 전국을 통틀어 단 2그루다. 하지만 화성시의 그것은 노화 상태가 많이 진척되어 밑동이 부후(腐朽)되어 구멍도 나 있고 옹이가 많아서 지지목 부축을 받은 채로 버티고 있다.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청석로 298)에도 주목을 받는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83호(2002.9. 16.)로 지정돼 있다. 물푸레나무의 유전자와 종의 보전·관리에 의미 있는 나무라서다. 높이 약 11m, 둘레 2.73m를 자랑한다. 흔히 대하는 물푸레나무들의 4배 크기다. 즉,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도 일반적인 크기의 것들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대형종이다.

파주 교하의 물푸레나무. 경기도 기념물 제183호

이 교하의 물푸레나무는 무건리의 천연기념물 수령(200년 추정)보다 젊고(100년 정도), 수세와 생장 상태가 훨씬 좋아서 장차 무건리 물푸레나무의 대체목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도 여기고 있다. 특히 주변에 동종의 어린 물푸레나무가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어서 파주가 물푸레나무 거수목 생장 적지로 여겨지고도 있다.

파주의 보호수들 일별해 보기: 느티나무가 대다수, 파주향교에 3그루... 등등


파주의 보호수는 현재 53그루다. 31호(법원읍 웅담리) 느티나무가 2020년 태풍으로 가지가 찢어지는 등 보호 가치를 상실하여 지정해제 상태다. 그중 느티나무가 대종을 이루고, 향나무와 은행나무, 회화나무(1그루), 시무나무(1그루)가 극소수로 섞여 있다. 전국적으로는 총 13,859 그루 중 느티나무(7,278), 소나무(1,753), 팽나무(1,340), 은행나무(769) 순인데, 파주에는 소나무 보호수가 아직 없다.


보호수 중 단 1종인 53호 시무나무(검산동 산 58-3)는 전국을 통틀어서도 매우 희귀한 사례다. 시무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편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의 천연기념물 미선나무처럼 1속 1종의 희귀종이다. 경북 영양의 시무나무는 단일종 지정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비술나무 숲의 가치를 보태서 하나로 묶여 천연기념물 제476호로 지정되었다(2007.2.21.)

파주 53호 시무나무

노거수(老巨樹)들은 수종을 불문하고 대체로 외양이 비슷하다. 마치 늙어가는 어르신들의 외양이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과도 흡사하다. 파주의 보호수 중에는 우영우의 나무(팽나무)와 흡사한 것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3호(법흥2리)와 24호(율곡리)를 꼽을 수 있는데, 둘 다 팽나무가 아닌 느티나무다.


파주 향교에는 세 그루의 보호수(38호, 40호, 41호)가 있다. 단일 장소로는 최다인데, 2그루가 느티나무이고 41호가 향나무다. 자운서원에도 서원 건물 입구의 좌우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각각 28호와 29호로 지정돼 있다.

자운서원 입구 좌우의 28호~29호 느티나무

특이하게 군 부대 안에 있는 것도 있다. 39호 느티나무다(파주1리. 7663부대 안). 대부분이 정자목인데 비해서 이것은 유일하게 명목(名木)이다. 성현, 위인, 또는 왕족이 심은 것이나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이 있는 이름 있는 나무를 명목으로 분류한다.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의 남편인 박명원이 살던 집터에 심어진 것인데, 박명원이 박지원 등과 더불어 연행사의 정사(正使. 수석대표)로 다녀온 뒤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역사성이 감안되어 명목으로 등재되었다.

39호 느티나무. 유일하게 군 부대 내에 있는 명목

1982년 10월 15일은 파주 보호수들의 생일이다. 파주시 소재 보호수들을 일괄 정리하면서 대부분의 보호수들에 공식 명찰을 단 날이기 때문이다. 그 일괄 정리 후 추가로 지정된 것들은 51호(2009), 52~53호(2010), 54호(2011)다. 보호수들의 공식적인 지정.해제권자는 산림청장 또는 시도지사다.


파주의 보호수들은 하나하나 살펴볼 때 그 사연들이 없는 게 없다. 가장 소박하게 동네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온 것들(정자목)에서부터, 동네의 길흉사(또는 흉.풍년)를 점지한다고도 여겨졌고, 의미 있는 일(사당/서원/묘역 건립 등)을 했을 때 기념수로 심어지기도 했다. 굿나무로 여겨져 지금도 외지 무당들이 간간이 찾아오는 나무들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특히 노거수는. 다가가 직접 살펴볼 때 그 느낌의 광폭은 무척 달라진다. 일례로 용문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수령 천 년을 넘긴 할머니(그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컷이다)인데 아직도 어린 싹들을 밑동에 보듬고 있다. 식생용 콘크리트 땜질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면서도...... 은행나무가 중생대 이후의 화석목이라 불리는 이유다.

용문사의 천년 은행나무 밑둥 부분에서 솟은 어린 은행나무 싹들. 10여 년 전 오랜 보수+섭생 끝에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을 때 필자가 직접 대면한 모습이다.

또 학자수(學者樹)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궁궐이나 양반가에서 반드시 심었던 회화나무는 노거수가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수피에 이끼를 매단다. 외모 따위를 신경 쓰지 않은 채로. 그렇게 해서 늙은 나무의 수피에서 발산되는 수분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애를 쓴다. 회화나무는 콩과식물로, 콩/강낭콩 등과 같은 과다. 그래서 어릴 때는 엄청 빨리 자란다. 필자가 직접 길러보니, 2년에 2미터 이상 자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수령 500년 정도를 넘겨서 노거수로 꼽히는 회화나무는 겨우 10여 그루에 불과하다. 즉, 어릴 때는 속성종이지만, 수령이 몇백 년을 넘기는 것들은 매우 드물다.

회화나무의 수피에 낀 이끼들

보호수의 으뜸 표지는 노거수라는 점이다. 나무라 해서 모두 100년 이상 또는 몇백 년을 살아내진 못한다. 우리나라의 총 나무 수가 약 72억 그루쯤인데(2020 산림청 조사 자료) 노거수는 15000그루 아래이니 백만 그루당 2그루도 채 안 된다. 그만치 드물다. 오래 사는 나무들에게는 그 나무만의 특별한 애씀이 감춰져 있다. 그 애씀의 내용물을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배우려 할 수는 있다.


오직 위를 향해서, 옆 눈치 보는 일 없이 꼿꼿하게, 그러면서도 무성해진 가지들을 적절히 펼쳐서 무게도 골고루 나누고, 물과 영양분의 통로인 체관부도 챙기면서, 욕심 내지 않고 서두르지 않아서 그처럼 거목으로 자라난 건 아닐까. 거수목들 중에 하루아침에 쭉쭉 뻗어 올라간 녀석들은 단 한 그루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을 감히 해보고 싶다. 거목들은 겨눔 자체가 잡목들과는 다를 게 틀림없을 듯하다. 거인과 소인배들이 확연히 구분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군 지역엔 어디에고 반드시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들이 있다.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눈에 들어온다. 백만 그루의 나무들 중 2그루가 안 되는 노거수로 자라난 나무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겐 무언가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도 남는다. 어떤 가르침을 얻을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말없는 서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들임은 분명하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보호수들 또한 마찬가지다.


글쓴이: 파주알리미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