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 겨울의 문턱인 입동(立冬)을 하루 넘긴 평일 낮,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파주의 불교 사찰을 찾는 탐방 모임에 합류하였다. 오늘의 모임은 2022년 파주시민 제안 우수프로그램의 하나인 ‘어서 와! 파주는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으로 파주시의 후원을 받아 파주시 생활문화협동조합 ‘필수다’가 주관했다. 오전 10시 정각에 운정행복센터 앞에서 출발한 25인승 버스는 파주스타디움을 거쳐 첫 번째 방문지인 혜음원지로 향했다. 평일에 진행되는 관계로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는 못했다. 비록 13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오히려 탐방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서 와! 파주는 처음이지?’ 탐방 모임 기념사진


광탄면 용미리에 있는 혜음원지는 12세기인 고려 예종 때 창건한 숙박시설로 왕실, 귀족, 정부 관료들이 머물렀던 지금의 국립호텔과 같은 건물이 있었던 자리다. 혜음령의 동쪽 능선 아래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단을 이루는 건물지 형태를 보여 준다.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맨 위 상단에는 왕이 머물 수 있는 행궁터, 단 아래는 혜음사 절터와 숙박시설 터 등이 잘 정비되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운정에 사는 지헌준씨는 “분당에서 살다가 10년 전에 파주로 이사해왔다. 정작 파주에 살고는 있지만, 직장 등 생활권이 서울이라서 파주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요즘 정년을 앞두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때마침 ‘보글리야’라는 밴드 회원의 권유로 왔다. 해설사 이윤희 선생님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일행 뒤를 따라다니고 있는데 오길 잘했다”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혜음원지에 대한 느낌을 물으니 “오히려 건물을 복원하지 않고 옛날의 건물 흔적인 주춧돌만 남기고 깔끔하게 정비해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어쭙잖게 새로운 건물로 복원해 놓는다면 더 어색하고 이상할 것 같다. 다음에는 혜음원지 방문자센터의 영상실을 찾아서 디지털로 복원된 실감 영상을 봐야겠다”고 얘기했다. 

해설사 뒤로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단을 이루며 펼쳐진 혜음원지가 보인다

진지하게 해설을 듣고 있는 지헌준씨 (우측 끝)와

기획자 김자연씨 (우측에서 세 번째)

버스는 윤관장군 묘가 있는 방향으로 얼마를 가다가 이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자 바로 ‘장지산 용암사’라는 현판의 일주문이 일행을 내려다본다. 용암사는 국가 보물인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조계종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석불입상은 천연바위를 이용해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 놓은 2개의 거대한 불상으로 토속적인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시대 선종이 아들이 없어 원신 궁주를 맞이했으나, 역시 아들을 생산하지 못해 노심초사하던 중 궁주가 꿈에 두 명의 도승을 만나 얘기를 듣고 이곳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자 왕자를 낳았다고 한다. 이처럼 기자전설(祈子傳說)이 깃든 사찰로, 아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고 전해진다. 용암사를 출발한 일행은 늦은 점심을 먹고 마지막 행선지인 고령산 보광사로 차를 몰았다.


마애이불입상 근경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보광사는 용암사와 같은 조계종 사찰로, 파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신라 진성여왕 때 지은 유서 깊은 전통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으나, 다시 세우고 영조 때 어머니 숙빈최씨의 기복사(祈福寺)가 되면서 크게 중수되었다고 한다.

 

보광사 대웅보전 전경


중학교에 다니는 유연진(15세)과 함께 온 엄마 노은경씨는 “이곳 보광사는 일전에 파주시티투어를 통해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이 좋았는데, 단풍도 보고 싶고 오래된 사찰을 다시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 이번에는 딸하고 같이 왔다. 딸하고 와서인지 이번에는 느낌이 더 좋다.”며 흥겹게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연진이는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살 빼고 싶어서 왔어요.”라며 끼어든다. 노은경씨가 웃으며 “맞아요”라며 크게 웃는다. 오늘 좋았던 경험을 묻자 연진은 “저 위에 있는 석불전의 불상을 돌면서 키가 커지라고 소원을 빌었을 때요.”라며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김자연 기획자는 “‘어서 와! 파주는 처음이지?’는 필수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운정 신도시에 전입해 오는 인구가 많은데 파주가 고향이 아닌 분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그분들에게 파주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파주인으로서 자긍심과 애향심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는 파주의 역사 인물, 유교문화, 불교문화, 조선왕릉, 산성 유적 다섯가지 주제로 탐방을 기획, 편성하였다. 이번 주제는 3번째로 파주의 불교문화로 대표적인 사찰을 찾는 시간이었다. 오늘을 계기로 널리 홍보되어 남아있는 일정에 많은 참여가 있기를 기대한다. 4차는 11/19(토)에 조선왕릉, 5차는 12/4(토)에 진행되는 산성유적 탐방에도 많은 신청자가 몰려오기를 기대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도했다는 불상을 배경으로 연진이와 노은경씨

‘어서 와! 파주는 처음이지?’ 홍보 포스터

이렇듯 파주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이 많다. 옛말에 ‘백문이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 한 번쯤 머리와 가슴을 살찌워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 어서 와! 파주는 처음이지? 프로그램 신청 방법:

밴드 앱에서 ‘파주이야기가게’ 또는 ‘필수다’를 검색하여 밴드에 가입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서 신청하면 된다.


* 탐방지 소개

헤음원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430-31

용 암 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742-28

보 광 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 474번길 87


*취재 : 파주알리미 김명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