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이번에는 차를 몰고 ‘발랑리 50-1번지’까지 깊숙이 쳐들어갔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해서 정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길을 선택했던 것. 지난번 하산했던 길과 정상에서 창만5리로 이어지는 길의 중간으로 뚫린 짧은 등산로였다‘금병재’란 현판을 단 한옥 한 채가 가뿐하게 서 있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더듬다가 길을 놓치고 말았다. 등성이를 향하여 거미줄을 헤치고 가시나무에 긁혀가며 전진을 거듭했다. 등산로는 잘 가꿔진 무덤 옆을 지나고 있었다.산 아래서 정상까지의 최단거리를 선택할 때는, 꼭 그만큼 가파른 길이라는 점을 각오해야 하는 법이다.
발랑1리 0.9km, 금병산정상 0.3km. 오래지 않아 나타난 이정표가 그걸 예고했고, 죽은 말뚝과 산 나무를 얽으며 뻗어간 안전줄이 그걸 증명했다.한 발짝씩 고도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쏟는 사이, 이마 위로 하늘이 떴다. 공제선에 올라서자, 채석장 절개지 꼭짓점이었다. 이번에도 상처를 치유해볼 뾰족한 수는 안 보였다. 소나무에 기대선 이정표에는 정상 0.05km라 적혀 있었다. 50m라고 하면 쉬우련만, 모든 거리를 km 하나로 통일한 담당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이번 목적은 절개지 탐사였다. 정상 표지의 반대편, 절개지에 바짝 붙었다.
가능하면 절개지 아래 현장막사까지 내려가 볼 작정이었지만, 불가능했다. 굽은 소나무와 잡목들 사이로 켜켜이 쌓인 바위 조각과 돌 부스러기들이 제멋대로 미끄럼을 탔다. 돌아보니 100m쯤은 내려온 듯싶었다.
길이 끊겼으니 지친 몸을 이끌고 되짚어 올라가야만 했다.저절로 발밑의 돌들을 살피게 되었다. 납작하고 얇은 바위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고 보면, 금병산은 구들장으로 쓰라고 준비해둔 건축자재였는지도 몰랐다. 그게 바위든 나무든 사람이든, 쓸모가 있으면 손을 타게 마련. 금병산이 깎이고 무너지며 벼랑을 만든 건 자신의 내부에 쓸모 있는 보물을 지닌 업보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