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나무는 비탈을 내려오는 중이고 젊은 참나무들은 언덕을 올라가는 참인 듯싶은데, 가만가만 흔들리는 가지 끝에는 뻥 뚫린 하늘이 높다랗게 걸려 있었다.
최단거리 등산로를 선택한 덕분에 4개 코스가 한데 모이는 곳, 팔각정자까지 1시간 남짓밖에 안 걸렸다. ‘평화의 쉼터’ 표지판 옆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290m라고 적혀 있었다. 결코 얕잡아볼 거리가 아니었다. 언덕은 가팔랐고, 비어 있는 군부대 막사 입구를 지난 다음부터는 짧지 않은 나무계단들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길게 뻗어갔다.
출입이 허용된 동봉 정상(479m)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시야가 확 트였다. 오른편으로 모형 미사일이 서 있는 중봉(449m)과 군부대가 자리 잡은 서봉(495.9m)이 한눈에 잡혀왔다.
마지막 계단 위에는 정상표지석과 산불감시초소가 나란히 서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정상표지석부터 카메라에 담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성혼선생 후손이 해설을 달았다.
“저 건너 서봉이 진짜 파평산 정상이지요. 거기를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으니, 여기에 495.9m짜리 가짜 정상표지석을 세워서, 등산객들 증명사진을 박게 해주자는 배려라고나 할까요.”
전망은 빼어나서 임진강 건너로 북한의 기정동마을, 개성공단, 송악산, 닭벼슬봉 들이 주르르 달려들었다. 누가 이 아름다운 강산을 갈라놓았단 말인가. 감탄과 원망이 교차하는 사이, 성혼선생 후손이 감시초소 뒤쪽으로 이끌었다.
“전망이라면 이쪽도 빼놓을 수 없지요. 중봉과 서봉은 물론, 비학산 감악산 고령산 북한산까지 한 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기, 양쪽 벼랑 사이로 중봉까지 쫙 뻗어간 좁다란 능선이 주마대랍니다.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이 말을 훈련했다는 치마대는 저 건너 서봉 어딘가에 있겠지만, 아쉬운 대로 이곳 주마대도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성혼선생 후손의 해설이 느닷없이 주마대를 내달려 50여 년 전으로 훌쩍 건너뛰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은 덕천리 쪽 4코스와 법원읍 웅담리에서 올라오는 군사도로가 더 있지요. 1968년 1월 하순, 개성에서 출발한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얼어붙은 임진강 고랑포를 건넌 뒤 곧바로 파평산으로 올라붙었다고 해요. 저 아래 타이거CC 옆 포수바위, 등산로 4코스, 군사도로를 통과해서 비학산으로 건너갔다지요. 그들은 파평산 비학산 삼봉산 노고산 팔일봉 고령산 북한산비봉을 거쳐 자하문까지, 30kg 완전군장을 갖추고 평균시속 12km로 내달렸답니다. 청와대를 까겠다고 말이지요.”
털어놓자면 끝도 없을 사연을, 마주보고 고개 끄덕이며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