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봄이 오면 즐겨 부르던 <봄맞이 가자>(김태오 작사/박태현 작곡)라는 동요다. 
첫 구절 ‘동무들아 오너라’는 잘 생각나지 않아도 이 구절만은 온 국민에게 익숙하다. 그만치 달래 냉이 씀바귀는 한 무더기로 새봄의 전령사가 된 지 오래다. 요즘은 그중 하나인 냉이가 우리 곁에서 손을 흔든다. 냉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속내를 알게 되면 속정도 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속마음이나 일의 내막’(속내)을 알게 되면 ‘은근하고 진실한 정’(속정)을 주게 된다. 냉이의 속내를 살펴보는 일은 냉이 사랑을 좀 더 살뜰하게 해낼 수 있는 일로도 이어진다. 아는 만치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게 되며, 생각하는 한도로 세상 읽기와 철들기가 이뤄지기도 한다. 냉이 하나에도 작은 우주가 들어 있다.

냉이에도 네 가지가 있다?

흔히 냉이를 봄철에만 먹는 것으로 안다. 아니다. 아는 이들에게는 냉이가 사철 음식에 가깝다. 비닐하우스 재배 덕분이 아니어도 그렇다.

이른 봄철, 특히 2월에 대하는 냉이는 실은 겨울냉이다. 늦가을에 싹이 나서 자란 상태에서 겨울을 난 것들이다. 봄냉이는 3월 이후에 나오고 3월이 지나면 꽃대가 나온다. 가을냉이는 봄냉이의 씨가 자란 것이고, 그중 늦가을에 발아하여 겨울을 나고 2월에 볼 수 있는 것이 겨울냉이다. 거기에 요즘엔 판매용으로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것들이 사철 출하되고 있다. 이른바 사철냉이다. 그래서 냉이에는 나오는 시기가 다른 네 가지, 곧 겨울냉이, 봄냉이, 가을냉이, 사철냉이가 있다.

이 네 녀석들은 잘 보면 육안으로도 구분된다. 우선 석 장의 사진부터 보인다.

겨울냉이

겨울냉이

봄냉이

봄냉이

사철냉이

사철냉이

겨울냉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잎이 작거나 보잘것없다. 얼핏보면 잎이 시들었거나 녹아든 것으로도 보이고, 녹색이 아주 적어서 적갈색으로 보인다.
혹한을 견디려면 광합성을 줄여야만 하기에 잎의 엽록소를 스스로 덜어내서 그렇다. 그 대신 뿌리가 길고 실하다. 냉이 뿌리 중에서는 이 겨울냉이가 가장 제맛을 낸다. 쏘는 맛과 단맛 모두에서 가장 빼어나서, 국과 찌개용으로 알맞고, 무침용으로는 외견상 좀 떨어진다. 녹색이 적어서, 추레하게도 보인다.

봄냉이와 가을냉이는 같다. 녹색이 짙고 뿌리 길이도 적당하다.  외견상 가장 냉이답다.  무침용으로 가장 알맞다.  다만 냉이 특유의 향은 겨울냉이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비닐하우스에서 상품용으로 길러서 나오는 사철냉이는 잎 모양에서 가장 앞선다. 그러나 노지에서 자란 것들에 비하여 뿌리가 짧거나 잔가지가 많고, 무엇보다도 냉이 향에서 크게 뒤진다. 대신 이파리 부분이 풍성하여 보기에는 봄.가을냉이 이상이다.

냉이는 숨어 있는 우수한 건강보조제다

냉이의 향은 독특하다. 식욕도 돋우지만, 그 숨은 기능도 빼어나다. 자가 면역 기능을 높이는 데에 크게 한몫한다. 냉이도 십자화과에 속하는데, 십자화과 채소에는 설포라판과 인돌-3-카비놀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이것들은 각각 항암 효과와 더불어 발암물질이 세포에 일으킨 손상을 치료하는 효과를 보인다. 암 환자, 그중에서 특히 폐암 위험을 낮추는 데에 이 십자화과 식물을 적극 권장하는 이유다. 냉이와 비슷한 향을 지닌 겨자 또한 같은 십자화과이고, 무/배추/순무, 양배추/브로콜리 등도 같은 과로서 같은 효능을 보인다.

냉이는 특유의 맛과 향으로 미각을 돋워주는 덤도 있다. 입맛이 떨어지는 봄철에 단번에 손쉽게 미각을 끌어올리는 숨어 있는 모범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냉이는 단백질, 비타민 A, C, B1,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C와 철분은 1회 분량(50g)에 각각 하루 권장량의 37%, 28%나 될 정도로 많이 들어 있다. 냉이는 단백질이 8%로 탄수화물 7.4%를 앞지를 정도로 다른 산채류에 비해 단백질의 함량이 높아서 아르기닌/프롤린/메티오닌 등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아연/망간/셀레늄 등도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우리나라의 농촌진흥청도 그에 주목하여 학문적으로 정리한 냉이의 추가 효능만도 다음과 같이 7가지나 된다.(https://www.korea.kr/news/healthView.do?newsId=148811143) 몸과 눈의 피로/춘곤증/스트레스 해소(비타민 C와 B12), 면역과 상처 치유 기능(아연), 해독과 집중력 향상 기능(망간), 항산화/항암 효과(셀레늄), 소화 촉진과 혈압 저하(칼륨), 빈혈/골다공증 예방(철분과 칼슘)

참고로, 뿌리 맛으로만 보면 냉이와 비슷한 것으로 고추냉이와 와사비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것들이다. 고추냉이(Wasabia koreana)는 종명 표기의 koreana에서 보듯 한국 특산으로 냉이와 비하여 잎이 너른 뿌리 채소이고(잎은 곰취와 비슷하다), 와사비(Wasabia japonica)는 일본 특산으로 물에서만 자란다.

고추냉이의 잎과 뿌리. 잎은 쌈채소로도 먹는다

고추냉이의 잎과 뿌리. 잎은 쌈채소로도 먹는다

냉이는 말없는 인생 교사이기도 하다

냉이의 가장 큰 특징은 뿌리가 길다는 것과 냉이의 주성분이 그 뿌리에 있다는 점이다. 냉이의 뿌리들은 직하방으로 뻗는다. 제대로 된 냉이일수록 곁뿌리가 없고 잔뿌리도 적다. 그처럼 올곧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깊이 곧게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제대로 속이 찬 사람들이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과 같다.

반대로 잔 뿌리가 많은 것들은 몹시 고생한 것들로 뿌리도 짧고 잎 모양도 볼품이 없다.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은 인생의 외피와 닮았다.
맛에서도 한 품 아래다.

곧게 자란 냉이

곧게 자란 냉이

힘든 환경에서 자란 냉이

힘든 환경에서 자란 냉이

여리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냉이는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 앞에서도 결코 굴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뿌리 주변을 얼음이 감싸고 있어도 꿋꿋이 버텨낸다. 그리하여 새봄을 맞아, 꽃을 피우고 자손들을 퍼뜨린다. 인간은 체온이 1.5도만 내려가도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28도 이하에서는 사망하고 만다.

인간은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내면은 얇아진다. 호들갑스럽다. 여름 더위 앞에서 부채와 손풍기를 찾고, 조금만 추워지면 방 안으로 스며든다. 온돌 시절에는 윗목/아랫목을 찾아 손바닥으로 쓸기도 했다. 같은 방 안에서도. 냉이의 수백 배 덩치인 인간도 더위나 추위 앞에서는 냉이보다 수백 배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일부 인간은 형편과 무관하게 두리번거리며 주변 눈치를 살핀다. 남들과 집과 차의 크기, 옷, 화장품에서부터 심지어 자식들의 교육까지도 따라 하거나 비교하기 바쁘다. 냉이가 자신의 본령인 뿌리의 향과 맛을 제대로 이뤄내기 위해 그저 묵묵히 한길로만 뻗어내려가는 모습과 비교된다.

실한 뿌리를 지닌 냉이들, 곧 겨울냉이들의 외양은 위에서 본 것처럼 엽록소를 줄여서 색깔도 갈색을 띠고 이파리가 시원치 않아서 볼품이 없다. 추레할 정도다. 하지만 뿌리가 실한 것들을 끓이면 향도 더 날 뿐 아니라 구수한 단맛도 살짝 난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스틴 덕분인데 이것은 케라틴을 많이 함유한 채소(십자화과) 뿌리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배추꼬랑이를 삶았을 때 단맛이 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뿌리가 실한 사람들, 외양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단맛이 난다. 그들이 남기고 가는 것은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이 사회에서 올곧게 살아간 이들은 죽어서도 이웃을 단맛으로 덥힌다. 자신의 것들을 챙기지 않고 떠날 때 특히.

바야흐로 냉이 철이다.

주변에 솟아있는 냉이들에게 알은척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단순한 바깥바람 쐬기 정도에서 끝나진 않는다. 정신의 바람쐬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냉이와 조금만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면.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jony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