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별은 받들린다. 우선은 도달하고 싶은 희망이나 대망[꿈]의 상징이다. 때로는 손에 넣을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워지는 아름다운 존재로 떠받들리기도 한다. 별들은 하늘을 가득 채울 듯이 수많은 존재인데도 거의 예외 없이 소중하게 받들리는 까닭, 그것은 멀리 있어서다. 어떻게 해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가까이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거나 비교적 자주 대할 수 있는 것들은 그 반대다. 제값을 쳐주지도 않지만, 가치가 잘 묻히거나 쉬 잊힌다. 그 수가 아주 적거나 유일한 것일 때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가족에 대해서도 때로는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있는 것은 너무나 가까이 머물고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진귀함은 낱개로 떼어 놓고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명징하게 빛난다. 그것이 물건일 때는 진품(珍品)이라 하고 사람일 때는 흔히 진인(眞人)/귀인(貴人)이라고들 한다.

파주에는 그런 진품들이 적지 않다. 그 이름이 자주 호명되는 사이에 외피에 명찰만 달아주었을 뿐,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 안까지 감정하는 일을 가끔 잊는 그런 것들이기도 하다. 진품들은 예외 없이, 그리고 기본적으로 희귀한 존재들이기에 그런 세심한 대우들을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진품들 몇 가지를 2회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늘 그렇듯,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는 일은 적잖게 정신의 눈과 귀를 새롭게 청소하게 되는 부수입이 돌아온다. 제아무리 명품 진품이라 하더라도 무관심과 방치는 폐품으로 이끌고, 관심과 사랑 그리고 수고가 덧대지면 명물이 된다. 모든 것들이. 사람까지도...

파주산 캐비어

세계의 3대 진미로는 푸아그라(foie gras. 거위간),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에 캐비어(caviar. 철갑상어 알)를 꼽는다. 이 중에서도 푸아그라를 뺀 나머지 두 가지는 일반인들이 쉬 접할 수 없다. 값이 비싸서다.
서구 사회에서 부잣집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면서 자랐을 때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캐비어를 먹고 자랐다(He was born with silver spoon in his mouth and raised with caviar)라 표현한다[우리나라에서 얼마 전부터 유행한 ‘흙수저/금수저’ 얘기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치 캐비어는 일반인들이 쉬 넘볼 수 없는 고가 식품이었다.
캐비어는 민물고기인 철갑상어의 알을 염장 숙성시켜 만든다. 철갑상어는 수명이 100년쯤 되는데 현재는 멸종 위기종이다. 매년 몸무게의 20% 가량에 해당되는 알을 낳는다. 캐비어는 이 알을 염장하여 8 ~10°C로 숙성시켜 만드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생산자마다의 비법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구두약 통 정도의 1온스(약 28g) 제품 가격이 몇만 원에서 20만 원대*까지 천차만별인 것도 그 때문이다. [*주: 요즘은 중국의 대량 양식으로 전 세계에서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 때문에 소규모 생산자들은 울상이고, 소비자들은 웃는 희비 쌍곡선이 연출되고 있다.]

이 캐비어를 맛볼 수 있는 곳이 파주에도 있다. 임진강폭포어장[파평면 청송로 550. (031) 959 2222]에서 철갑상어를 양식하여 회와 캐비어(2~4g)를 함께 제공한다. 캐비어는 주로 카나페로 잘 어울리는데, 저작감은 연어와 날치 알의 중간쯤이고, 맨입으로 먹기엔 약간 짜다.

임진폭포어장의 철갑상어

임진폭포어장의 철갑상어

폭포어장에서 제공되는 캐비어

폭포어장에서 제공되는 캐비어

실은 임진강폭포어장 자체가 파주의 진품이다. 파주가 시로 승격되기 훨씬 전부터 파주를 알리는 데 1등공신이었다. 총 면적 3만 평에 개장 당시 수(水)면적 7천 평으로 동양 최대 규모였던 양어장을 비롯하여, 미니 골프장, 수영장, 캠핑장, 미니 식물원과 회의시설까지 갖췄던 종합 위락 시설 1호였다. 현재의 50대~70대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파주라 하면 대뜸 떠오르는 그런 명소였는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쇠퇴해져 가고 있다. 임진강리조트로 이름까지 바꾸며 애쓰는데,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까지 맞아 요즘은 휘청거리는 듯하여 무척 안타깝다. 특히, 파주를 빛내오던 명품의 쇠잔이기에...

임진강폭포어장 시설 안내판. 단순한 양식장이 아니라 종합 위락 시설이다.

임진강폭포어장 시설 안내판. 단순한 양식장이 아니라 종합 위락 시설이다.

참고로, 농어민들의 수익 제고를 위해 이 철갑상어 치어를 전국에 제공하고 있는 연구기관이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 031-8008-6510)가 바로 그곳인데 2012년 인공 종묘에 성공한 뒤로부터다.

궁중 요리 초계탕(醋鷄湯)의 복원과 김성수

여름 별미 보양식 중에 초계탕이 있다. 초계탕은 닭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다음 살코기를 잘게 찢어서 넣어 먹는 음식인데, 원래는 옛 궁중 연회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귀하신 몸이었다. 그것이 일반인에게도 번진 것은 북한의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별미로 먹게 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의 고급 궁중 요리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니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평민용 일반 요리였다. 25가지 정도가 들어가야 하는 양념을 일반 가정에서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그처럼 까다로워서 명맥이 끊어진 초계탕을 30여 년간의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복원하고 현대화하여 음식 특허를 받은 이가 파주에 있다. 식품영양학 교수 이건순과 공동 집필한 책자 <초계탕>(2008)을 펴낸 김성수(1952~ )다. 그 덕분에 수도권 일원에서는 쉽게 초계탕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초계탕을 소개한 책자

초계탕을 소개한 책자

법원읍 초리골에 있는 초계탕 음식점

법원읍 초리골에 있는 초계탕 음식점

씨는 닭을 주재료로 2대에 걸쳐 평양에서 냉면집을 이어온 가친으로부터 닭요리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약 100여 년 전 명맥이 끊긴 초계탕에 관심을 두고서 궁중 요리였던 초계탕의 맛을 기본 삼아, 수백 번의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의 초계탕을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그는 이제 가업이 4대째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비학산 초리골(0507-1410-5250)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어디서고 초계탕을 대하면 그건 파주 사람이 어렵게 복원한 궁중 요리라는 걸 떠올리면서 먹는다면, 음식의 뿌리와 수고를 알아주는 일도 되어 더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오래 혹은 특별히 기억되는 음식에는 사연들이 있다. 그 사연들이 특별한 고명으로 얹힌다. 일부러 사연을 만들어서 음식을 찾아가 먹는 이들도 그래서 있다.

6.25정전회담문 서명 탁자

6.25는 우리 민족에겐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상흔이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종전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정전 상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대치 상태를 확정지은 것이 6.25정전회담이다. 회담은 전쟁 발발 1년 후인 1951년 7월부터 2년 동안이나 지리하게 이어졌다. 그새 회담 장소는 개성에서 판문리의 텐트로, 거기서 다시 막사 가건물로 옮겨졌고 최종 서명은 그 가건물에서 이뤄졌다. 현재의 판문점 건물들과는 한참 떨어진 곳이다. [6.25 정전회담과 판문점 및 협정문에 관한 재미있는 이면사는 뒤에 별도 기사로 상세히 다뤄진다.]

이 정전회담 협정문에도 사연이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서명 국가는 북한, 중국, 유엔이다. 실질적인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한국은 빠져 있다. 한국의 불참은 이승만 대통령의 완강한 정전 반대 때문이었다. [마지못해 조건부로 미국의 뜻에 동의했지만, 그 조건들이 협정문에는 모두 수용된 것은 아니어서 불참했다]

6.25정전 협정 서명본 (영한)

6.25정전 협정 서명본 (영한)

이 협정문 서명은 두 단계로 이뤄졌다. 가건물에서 북한 측의 남일과 유엔군의 해리슨 중장이 '참석자(present)'라는 희한한 자격으로 먼저 서명한 뒤, 평양으로 갖고 가 김일성과 중국의 팽덕회 서명을 받은 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서명하고 그 원본을 양측이 하나씩 나눠 가졌다(그래서 우리나라에는 한글본 원본이 없고 북한이 갖고 있다.).

이 협정문의 한글 타자에 사용됐던 타자기가 공병우 박사의 보급용 시제품 타자기였는데, 그중 한 대가 이곳 파주에 보존돼 있다. 2편에서 다룬다.
클라크 대장이 그 서명을 하기 위해 대기했던 곳이 파주의 문산극장이다. 서명은 극장 내 소탁자에서 했다. 그 탁자가 현재 파주에는 없다. 사진에 보이듯 서울의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져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6.25정전협정문 서명 시 문산극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사용했던 탁자. 현재는 전쟁기념박물관(서울)에 전시돼 있다.

6.25정전협정문 서명 시 문산극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사용했던 탁자. 현재는 전쟁기념박물관(서울)에 전시돼 있다.

정전회담의 최종 마무리는 결국 파주에서 이뤄졌고, 미뤄진 뒷마무리들을 해내는 판문점도 행정구역상으로는 파주에 속한다. '파주시 진서면 통일로 3303'. 작년 말 67년 만에야 판문점의 정식 주소를 찾았다고 떠들썩하게 보도되기도 했던 주소다.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jony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