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하는 역사가들은 때로는 그 일이 손쉬울 때가 있다. 일례로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지속된 한반도 내의 전쟁으로서 전사 175,801명, 부상 554,202명, 피란민 2,611,328명이 발생한 민족의 비극이었다’로 요약하면 된다. 그 안에 피란민들이 치렀던 고난의 행군 기록은 들어갈 자리도 없거니와, 낱개로 살펴보는 일은 군더더기가 된다. 주관이 배제되어야 하므로.

마치 아픈 자식을 둔 부모가 자식의 입장에서 일기를 써나갈 때 그 아픔의 심도와 진폭 앞에서 마냥 하늘을 바라보던 일 따위가 잊히게 되는 것과도 흡사하다. 그렇게 해서 개별적인 슬픔과 고통은 그냥 묻힌다. 하지만 묻힌다 해서 실물 자체가, 진실의 현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르포 기사 앞에서 기자들이 망연해하거나 무력해지는 건 그런 때다. 파주의 오랜 응어리이면서도 요즘의 파주 사람들까지도 그 실물을 외면해 오는 사이에 그 진실이 잊히고 있는 용주골 사연 또한 그런 예다.

용주골은 6.25가 남긴 부끄러운 상흔 중의 하나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미군이 대거 참여하게 되고 종전 후에도 미군 기지가 유지되면서 생겨난 이른바 ‘기지촌’이다.  수많은 미군이 찾았고, 어떤 미군 부대장은 이곳을 찾기 위해 헬기까지 타고 왔다가 그 사실이 알려져 좌천/강등됐던 비화도 있다. 서울의 집창촌 단속의 풍선 효과로 인해 수도권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하던 시절도 있었다.

용주골의 집장촌 모습

기지촌 여성과 미군
(출처 : 미국 국립기록관리청)

아직도 남아있는 용주골 집창촌 모습

아직도 남아있는 용주골 집창촌 모습

2000년대 들어 미군기지가 이전하고 2004년 말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업소와 종사자 수가 대폭 줄었다. 경찰청은 (2021년 4월 30일 기준) 용주골에 35개 업소에 70명의 종사자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 차 들른 추석 당일 오후에도 여러 업소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고, 그중 한 여인은 그날이 새 영업 2일 차라 했고, 또 다른 여인은 1주일째라고 했다. 소수지만 요즘도 외지에서 종사자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지난 6월 강제 영업 폐쇄에 맞서 업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수원역전의 집창촌이 사라지고, 평택역 쌈리의 집창촌도 자진 폐쇄에 들어가면서 경기도 내에 유일하게 남은 응어리의 현장이 바로 용주골이기도 하다.

용주골의 환골탈태

파주의 오랜 응어리이기도 한 이 용주골(연풍리)의 변신을 위한 파주시의 노력은 크게 세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용주골 창조문화밸리 프로젝트’와 ‘연풍 새뜰마을 사업’, 그리고 용주골이 포함된 파주1-3재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연풍교 북쪽의 연풍삼거리에서 술이홀로 구간을 따라 창작 문화 거리로 조성

연풍교 북쪽의 용주골삼거리에서 술이홀로 구간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에서 펼쳐지는 것이 <용주골 창조문화밸리>를 조성하기 위한 연풍길 사업.
갈곡천변 위쪽의 연풍시장 주변과 연풍4~5길에서 약수로 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연풍 새뜰마을 사업’이다.

이들 사업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첫 번째는 연풍리 295-13 일원(연풍1, 4리)에서 펼쳐지는 특수상황지역 개발사업으로 ‘용주골 창조문화밸리 프로젝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행정안전부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예산 배정 104억 원) 현재 EBS와의 협업으로 용주골삼거리에서 연풍초교 방향으로 1km 가량의 술이홀로 인근의 남쪽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파주시에서는 사업 구분의 편의상 ‘EBS 연풍길 ’로 칭하고 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사업 구역을 지도로 상세히 보이면 아래와 같다.

EBS 연풍길 사업 구역  (출처: 파주시)

‘EBS 연풍길 ’ 사업 구역  (출처: 파주시)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 연풍길 사업에는 주요 거점 시설인 연풍다락(주민 및 방문객 커뮤니티), 연풍마루(교육 및 워크샵), 연풍소록(상설전시), 연풍파켓(공개 공지), 연풍경원(주차장 및 캐릭터가든), 연풍마중(소광장), 입면 개선 사업 등등이 포함돼 있고, 연풍시장 일원의 빈 점포에는 공예인 입주를 통한 문화거리 조성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중 커뮤니티센터(파주시 도시재생 지원센터)와 청소년문화공간 쉼표 등은 이미 완공되어 현재 이용 중이다.

공예인들이 입점할 소점포 10곳의 조감도 (출처: 파주시)

공예인들이 입점할 소점포 10곳의 조감도 (출처: 파주시)

둘째로는 국토교통부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2020.6. ~ 2024.5.간에 시행되는 이른바 ‘연풍 새뜰마을 사업’이 있다. 도시 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 사업으로 주택과 생활·위생인프라 정비, 공폐가 철거 등을 통한 안전 확보, 주민역량 강화(취약계층 돌봄과 주민자활 지원) 등을 목표로 파주읍 연풍리 299-5 일원(연풍1리)에서 시행되고 있다. 연풍시장 주변과 연풍4~5길에서 약수로 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이 사업들 중 소규모인 둑길 가꾸기와 같은 마중물 사업들은 이미 완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집창촌을 포함하는 지역의 재개발이 있다. 재개발 사업은 민간 개발회사가 진행하는 것으로,  2015년 용주골이 포함된 19만㎡ 가 개발구역으로 지정됐고, 2017년에 조합 설립이 이뤄졌다.  파주시의 인가를 받은 조합은 올해 1월 무궁화신탁을 조합 업무를 대행할 업체로 선정했고, 약 2600세대가 거주할 공동주택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연풍교 아래 지역에 건설되는 파주1-3재개발 조감도. 그림 위쪽에 보이는 개천이 갈곡천이다. (출처: 무궁화신탁)

연풍교 아래 지역에 건설되는 파주1-3재개발 조감도. 그림 위쪽에 보이는 개천이 갈곡천이다. (출처: 무궁화신탁)

용주골 삼거리 전경

용주골 삼거리 전경

재개발 사업을 포함하여 이 세 갈래 사업이 완성되면 이 일대가 완전히 새롭게 변신하게 되어, 집창촌의 대명사로 더 자주 쓰여온 용주골이라는 이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연풍리 인근에서 대규모로 실시되는 도시 복합 개발 사업인 파주희망프로젝트 사업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것은 파주읍 봉암리∙백석리∙파주리 일대 374만여 ㎡의 부지에 5단계의 산업단지 조성과 도시개발을 추진하는 사업인데, 바로 연풍리와 잇대지는 주변 지역의 복합적인 도시 개발 사업이기도 해서다.

우리말에 ‘연풍대’가 있다. 그중 연풍대(燕風臺)는 기생이 추는 칼춤을 이르기도 하고, 기생들이 노래를 부를 때에 빙빙 돌아다니는 곳이나, 농악에서 장구 치는 사람이 한 번 뛰어 허공에서 재주를 넘는 동작을 뜻하기도 한다. 또 다른 연풍대(筵風擡)는 승무나 풍물놀이 따위에서, 오금을 구부렸다 일어나서 허리를 뒤로 젖히고 한 발을 내디디며 유연하게 도는 춤사위를 뜻한다. 용주골을 품어안았던 연풍리(延豊里)가 한 바퀴 돌아서 사뿐히 뛰어내리든 돌든, 머지않아 새로운 연풍(燕風/筵風) 동네로 날렵하게 태어나리라 믿는다.

집창촌 지역의 문화 거리 변신은 다른 시군에서도 시도된 일이다. 충남 아산의 ‘문화창작마을’ 조성, 춘천시의 ‘난초촌’ 재생 사업, 부산 완월동의 ‘예술마을’ 사업, 전주시의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 대전역 주변의 문화재생사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그러한 예다. 파주시의 오랜 노력이 멋지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날을 고대해 본다.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