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인은 평안-함길도 체찰사가 된 후 10년 동안 절제사 김종서와 함께 육진을 개척하는 등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세종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지키다가 계유정난 때 살해되었다. 관리가 당대의 권력에 충성하느냐, 국가에 충성하느냐를 선택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어려운 문제다. 300년이나 지난 영조 때에 이르러서야 신원이 이루어져 충정(忠定)이란 시호를 받고, 김종서를 비롯한 절육신 여섯과 함께 월계단에 배향되었다.
계단을 감아 오르는 머루덩굴에도 머루가 열린다. 조심스럽게 전망대 옥탑으로 올라서면 가슴이 탁 터진다. 북으로는 개성 송악산이, 남으로는 서울 삼각산이 한눈에 잡힌다. 언덕과 평야로 이루어졌기에 파평(坡平)으로 불리다가 세조비 정희왕후의 출신지라서 파주로 승격되었다는 역사에 걸맞게, 올망졸망한 산줄기와 언뜻언뜻 본색을 내비치는 강줄기가 정답다 못해 아슴아슴 안타깝다.
되짚어서 곧장 내려오면 비포장도로 옆 언덕이 헬기장이다. 거기서도 시야는 넓게 트여서 파주의 산야가 환히 드러난다. 주변의 풍광이 예쁘다. 한여름이면 길섶에서 오디와 개암이 익어가고, 헬기장엔 좁쌀만 한 분홍꽃이 피는 백령풀이 보료처럼 깔린다. 가을이면 아람이 버는 밤송이, 털모자를 벗어던진 도토리, 빨갛게 익은 청미래 열매가 잔치마당을 벌인다.
어릴 때 먹었던 망개떡이 생각이 절로 난다. 찹쌀가루 반죽에 계핏가루, 설탕, 꿀을 넣어 만든 거피팥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어 청미래덩굴 잎사귀를 앞뒤로 붙여 쪄낸 떡이다. 청미래덩굴잎의 향이 떡에 배어들면서 상큼하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
무지개산 정상으로 향하는 도로가에도 청미래덩굴이 즐비하다. 열매가 달려 있는지, 빈 덩굴뿐인지 살펴가다 보면 운동기구와 의자가 놓인 쉼터가 나온다. 산객들에게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이리저리 몸을 꼬고 뒤트는 나무들의 묘기자랑이 일품이다. 길은 계속 이어져서 네갈래길에 닿는다. 비포장도로는 오른쪽 향양리 쪽으로 구부러져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