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매끈한 시멘트 도로로 바뀐다. 두껍게 쌓인 낙엽이 몹시 미끄러운데, 절벽을 파고든 대피호가 신기하다. 보통의 참호가 사람이 드나들 정도라면, 봉서산 대피호는 트럭도 너끈히 드나든다. 산 아래서 치고 올라온 아스팔트 도로가 산허리를 휘감아 올라가는 갈림길에 전망대가 서 있다. 동쪽과 북쪽으로 시야가 트였으니 명학산 비학산 감악산이 첩첩하련만, 안개 속으로 뿌옇게 흩어지고 만다.
경사로를 따라가다 보니 검은 철문이 턱, 막아선다. 『파주시지』 1권 「파주 이야기」에 적힌 “산 정상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는데, 하나는 장사가 먹었다는 ‘장사우물’이고 다른 하나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대우물’이다. 또한 산마루에는 장사가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바위가 남아 있다”는 구절을 확인할 길이 뚝, 끊기고 만다. 장사우물과 전대우물도 궁금하지만, 공기바위는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봉서산 정상을 개방해도 좋지 않을까. 어딘가에서 읽은, 요새에 관한 글이 떠오른다.
“14세기에 대포가 등장하자 중세시대의 요새는 쓸모가 없어졌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대포의 화력을 흡수하기 위한 참호와 흙벽이 추가되었다. 19세기에 폭발탄이 등장하자 또 다른 진화가 이루어졌다. 요새의 대부분은 지하에 지어졌으며, 방책들과 사격 위치들이 통로로 연결되었다. 철근 콘크리트 요새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무기는 대규모 요새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오늘날 과거의 요새들은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