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으로 물든 등산로 입구

단풍으로 물든 등산로 입구

수투바위

수투바위

수투바위 등산로 표지판 앞에서 5분쯤 올라가자 주인공이 나타났다. 벌떡 일어서서 단번에 압도하는 위용만으로도 등산로 지도에 이름을 올릴만하다 싶었다. 수투바위? 심학산이 예전에 한강의 홍수를 막아냈다니 물과 싸운다는 수투(水鬪)일까, 아니면 거대한 두 마리 짐승이 맞선 바위 모양을 빗댄 수투(獸鬪)일까, 그도 아니라면 머리에 투구를 쓴 장군 형상이라서 수투(首套)일까. 궁리를 거듭하는 사이 둘레길 교차점에 닿았다. 그곳부터 정상까지는 200m. 올라온 거리 600m에 못지않은 수고를 강요하는 듯, 가팔랐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

심학산 정상전망대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심학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동판을 발견했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심학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동판을 발견했다.

정상전망대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순간 동판 위에서 글자들이 꿈틀했다.
‘고봉산 서맥 끝머리 벌판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 산은 홍수 때 한강이 범람하여 내려오는 물을 막았다 하여 수막 또는 물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메뿌리라 하여 호칭하였으며 영조 때 궁중에서 기르던 학이 날아서 도망가자 이 산에서 찾았다 하여 유래되었다.’
수막(水幕)이 심악(深岳)이었다가 심학(尋鶴)이 된 변천사를 그런 식으로 얼버무린 셈인데, 영조 이전에 구봉(龜峰)이었다는 기록은 빠졌다. 율곡 이이, 우계 성혼과 교유하면서 성리학의 깊이를 더했던 구봉 송익필이 구봉산 기슭에서 김장생 등을 길러냈다는 자취 말이다.

심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날씨 좋은 날에는 북한의 송악산도 보인다.

심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날씨 좋은 날에는 북한의 송악산도 보인다.

아무려면 어떠냐. 허리를 피고 일어서자 계양산, 마니산, 문수산, 애기봉, 개풍군, 파평산, 감악산, 금병산, 앵무봉, 삼각산 등이 주르르 둘러섰다. 자유로는 한강과 임진강을 끼고 내달리고 오두산통일전망대, 검단사, 출판단지, 운정신도시는 바둑판의 돌처럼 여기저기 널렸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안개 때문에 열 번에 한두 번도 어렵다는, 긴 머리 뒤로 쓸어 넘긴 만삭의 여인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똑바로 누운 형상이라는, 송악산까지 환히 보이지 않는가.
해발 194m밖에 안 되는 동산이 보여주는 전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광이었다. 20분 남짓만 땀 흘리면 파주의 망루인 정상에 올라 근심 걱정을 씻어낼 수 있다니, 심학산이야말로 파주시민의 보물 1호 아니겠는가.

심학산 둘레길 및 등산로 안내판

심학산 둘레길 및 등산로 안내판

등산객들은 심학산을 알려면 열 번은 걸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등산로 입구의 ‘둘레길 및 등산로 안내판’부터 상식을 뒤집는다고 말한다. 지도는 위가 북쪽이고 아래가 남쪽이다. 산의 북쪽에 사는 파주시민 위주로 제작하다 보니, 위가 남쪽이고 아래가 북쪽이 돼버렸다.
산세 또한 상식에 반한다. 우리나라의 산들은 동고서저(東高西低),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게 마련이다. 파평산 감악산 앵무봉도 그러하지 않던가. 심학산만은 교하배수지가 있는 동쪽이 낮고 정상전망대가 있는 서쪽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그렇거늘, 직접 걸어보지 않고 등산로나 둘레길의 속살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심학산에는 5개의 등산로와 7부 능선을 한 바퀴 감아 도는 둘레길이 있다. 가장 긴 등산로는, 교하배수지에서부터 옛날 여인들의 가르마처럼 곧게 뻗어간 주 능선을 타고 정상 전망대에 이르는 3km이다.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관리된 군사 도로여서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마지막 200m의 가풀막에서는 숨 가쁠 각오를 해야 한다. 다음은 산머루가든에서 둘레길 교차점과 주 능선을 가로지르고, 다시 둘레길 교차점을 지나 산남동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인기는 별로인 듯, 인적이 드물었다. 항상 등산객이 붐비는 곳은 주차장이 넉넉하고 오가는 이를 가리지 않는 약천사 등산로다. 사찰 뒤쪽을 지나는 둘레길로 접어들었다가 수투바위 교차점에서 정상으로 향하거나 주 능선의 체육시설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데, 어느 쪽을 택하든 20분이면 충분하다.
약사여래대불

약사여래대불

약천사 포대화상

약천사 포대화상

지장보살을 상징하는 약(藥)과 법당 앞에서 솟는 약수의 샘인 천(泉)을 합쳐 약천사(藥泉寺)가 되었다. 물맛이 개운해서 등산의 피로가 확 풀린다. 여느 사찰의 산신당만 한 대웅전 앞에서는 거대한 남북통일 약사여래대불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지만, 마당귀의 포대화상이 눈여겨볼 만하다. 여섯 아이가 화상의 몸뚱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어떤 놈은 젖꼭지를 더듬고 어떤 놈은 배꼽을 후비는 손가락 끝에서 미소가 지어지고 극락이 떠오른다.

출판단지 이웃의 서패동꽃마을에서 출발하여 둘레길 교차점에 있는 정자를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배밭 등산로는 800m, 20분이 걸린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200m는 내내 급경사의 계단이 이어진다. 무릎이 약한 경우, 피하는 게 좋다.

심학산 둘레길의 출발은 대부분 서패동꽃마을 약천사 수투바위 교하배수지에서 시작된다. 어느 곳이나 주차장이 조성돼 있어 편리하다. 교하배수지 오르막길에서는 규칙적으로 깔린 포도를 10분쯤 디디다 보면 배수지에 닿는다. 배수지는 정자와 화장실,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정신도시에 사철 맑은 수돗물을 나눠주려고 조성된 시설이라, 심학산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둘레길로 접어들어 시계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숲속 오솔길은 맨발로도 걷기 좋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맨발 걷기가 요즘 떠오르는 유행이라는데, 그곳에서 한번 도전해봄 직하다. 중간의 솔향기 쉼터에서는 법성사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개방한 듯 화장실 표지판도 서 있다. 사찰의 규모는 약천사보다 작은데, 대웅전만은 훨씬 더 크다.

아랫마을로 조금 내려가면, 산남동 52번지에 구봉 송익필 유허비가 서 있다. 앞뒤 건물 틈에 꽉 끼인 채, 글자를 새기다가 멈춘 미완성의 비석이, 조선조 신분사회에서 겪어내야 했던 우여곡절만큼이나 옹색하다.

낙조전망대 전경

낙조전망대 전경

드문드문 섞인 잡목들만 가을빛을 띨 뿐, 참나무가 주종인 숲은 아직 단풍 마중에 나설 기미가 없다. 서쪽 끝머리 낙조 전망대에서도, 무성한 나뭇잎 탓에 시야가 트이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강산도 폭이 좁은데, 그나마 바짝 다가든 강물만은 만만하고 정겹다. 쉼터에 앉아 잠깐 다리쉼을 한 뒤, 배밭 정자와 수투바위 교차점과 약천사를 거쳐 산머루가든 교차점을 지나 교하배수지로 회귀했다. 둘레길 총 연장 6.8km, 놀며 쉬며 2시간 반. 이제는 심학산 곳곳 다 밟아본 것 아니겠나 하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상 전망대에서 황혼을 배경으로 아우르는 강물의 용틀임을 봐야만 했다. 왜 양수(兩水)도 합수(合水)도 아닌 교하(交河)겠는가. 무엇이든 둘이 하나로 합쳐져야만 이루어진다. 창조와 잉태가 그것이다. 둘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를 바라보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몸을 섞어 조강(祖江)을 이루고, 다시 예성강과 한 몸이 되어 서해로 흐른다. 강화(江華)는 ‘강의 꽃’이다. 서해로 흐르는 세 개의 강물,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쳐 강의 꽃이 되었다. 그러니까 강화만의 낙조까지 지켜봐야만 심학산 탐방이 완성된다.

* 취재 : 강병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