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대 시문학에서 특이하고도 과감한 비유법을 구사한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1923)에서, 봄을 고양이로 특정했다. 특히 고양이의 털과 수염을 빌려 향기와 생기를 담아낸 비유법이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다. 그처럼 봄은 향기의 계절이자 생동하는 시간의 띠다. 봄의 으뜸 전령사는 뭐니 뭐니 해도 꽃이다. 봄꽃 계절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런 꽃들 앞에서 제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언뜻 보아서는 헷갈리기 쉬운 것들이 적지 않다. 가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진달래/철쭉/영산홍, 라일락/미스김라일락/수수꽃다리, 산수유/생강나무,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 등이 그렇다.

김춘수 시인은 명시 <꽃>에서,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몸짓일 뿐이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읊었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들이 된다. 사람까지도.

이번에는 1편에서 다룬 진달래/철쭉/영산홍, 라일락/미스김라일락/수수꽃다리의 구분에 이어, 산수유/생강나무,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 등의 구분법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노란꽃 세상을 여는 산수유와 생강나무

꽃이 피었을 때 멀리서 보면 무척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산수유와 생강나무다. 둘 다 잎이 나기 전에 노란 꽃들을 한꺼번에 피워올린다. 그러나, 다가가서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 두 가지를 구분해 낼 수 있다.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 꽃이 피어나는 모양새와 꽃 모양이다.

산수유

산수유

생강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 우산살처럼 퍼진다

산수유 : 우산살처럼 퍼진다

생강나무 : 뭉쳐피며 낱개로 쉬 구분되지 않는다

생강나무 : 뭉쳐피며 낱개로 쉬 구분되지 않는다

이처럼 산수유는 산개형으로 벌어지고 꽃자루가 긴데, 생강나무는 뭉쳐피면서 꽃자루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산수유 열매가 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된다. 열매들은 꽃자루 끝에 열리는데, 생강나무에도 작은 열매들이 열리지만 산수유처럼 길게 매달리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산수유가) 남자들에게 좋은데...’로 선전되고 있음에도 채취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서, 사진에서처럼 열매가 매달린 채로 꽃을 피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즉, 꽃과 함께 열매가 매달려 있으면 그것은 산수유다.

잎이 났을 때는 구분하기가 더 쉽다.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생강나무의 잎과 줄기를 비벼서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난다. 생강나무라는 이름이 그래서 나왔다.

산수유 잎: 되바라져있고 잎맥이 선명하다

산수유 잎: 되바라져있고 잎맥이 선명하다

생강나무 잎: 넓고 아래 쪽이 양쪽으로 오목하다

생강나무 잎: 넓고 아래 쪽이 양쪽으로 오목하다

이 둘은 수형(樹形. 나무 모양)도 좀 다르다. 산수유는 비교적 밑동이 굵고 큰 줄기가 곧게 뻗어 교목 형태가 또렷하지만, 생강나무는 그에 비하여 밑동도 작고 줄기도 굽은 것들이 많은 편이어서 작은 것들은 관목으로 착각하기도 쉽다. 그래서 조경수로 널리 채택되는 산수유와 달리 주로 야산에서 대할 수 있다. 산수유는 요즘 파주의 공원들에서 매우 흔히 대할 수 있고, 겨울철에도 빨간 열매들을 매달고 있어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흔한 개나리와 보기 드문 히어리, 둘 다 노란 꽃이 매달린다

개나리는 잘 알다시피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앞서 3월 17일 자 기사 <파주에도 미선나무와 히어리가 있다>에서 다뤘던 히어리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개나리처럼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온다.

개나리

개나리

히어리

히어리

이 둘은 꽃이 매달린 모양에서 대뜸 크게 차이가 난다. 개나리는 낱개의 꽃들이 줄기에 매달려 흩어져 피지만, 히어리는 꽃들이 뭉쳐서 아래로 한 줄로 매달리고, 사진에서처럼 열매도 모여서 맺힌다.

이 둘은 알게 모르게 비밀스러운 존재다. 둘 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식물들의 호적이랄 수 있는 학명 표기에 한국 특산(원산)을 뜻하는 koreana(coreana)가 붙어 있다. 히어리는 Corylopsis coreana Uyeki이고, 개나리는 Forsythia koreana다. 히어리의 영어 명칭이 Korean winter hazel인데, 우리나라 특산 표지가 이름표에도 자랑스럽게 달려 있다.

히어리가 예전에는 남부 일부 지역에서 눈에 띄었지만, 요즘에는 비교적 여러 곳에 번져 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히어리는 예전에 헤이즐넛(hazel nut. 개암) 커피가 유행하던 시절의 헤이즐(=개암나무)과 사촌이다. 잎과 열매를 보면 개암으로 착각하기 쉽다. 요즘에는 대규모 묘목장들도 있어서 묘목을 구하기도 쉽다.

히어리의 잎과 열매. 개암과 흡사하다

히어리의 잎과 열매. 개암과 흡사하다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 장미과 소속의 유실수 구분이 가장 어렵다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사과꽃/자두꽃/배꽃... 이것들은 좀 떨어져서 보면 전문가들조차도 단번에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식별이 쉽지 않은 것들이다. 색깔과 크기도 비슷하고, 잎들이 나기 전이거나 잎이 있어도 특성을 다 갖추지 않은 어린 새 잎이라서다.

이런 것들의 구분에는 상식도 도움이 된다. 모두 장미과 소속인데, 장미과는 꽃잎이 5장이다(대표종인 장미 잎이 그렇지 않은 것은 인위적으로 개량한 원예종이라서다). 대부분의 유실수가 그러하고, 찔레꽃/산딸기(복분자 포함) 등도 장미과에 속한다. 열매 모양과 크기 때문에 오해를 잔뜩 받는 모과도 그 꽃은 앙증맞게 작고 귀여운데, 역시 장미과로 꽃잎은 5장이다.

열매가 매달리는 모양을 떠올려보는 것도 제대로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벚나무의 버찌와 같이 길게 매달리는 것들은 꽃자루가 길다. 그 반면 줄기나 가지에 딱 붙어서 열리기 때문에 수확 때 전정가위를 써야 할 정도의 것들은(복숭아/사과/배/모과 따위) 꽃들도 가지에 바짝 붙어 핀다.

비교적 쉬운 표지판은 개화 시기다. 매화가 가장 빨리 피고(홍매화는 겨울에도 피고, 백매화는 3월), 그다음이 벚꽃이다. 뒤를 이어 살구, 배, 복숭아, 사과 등의 순서로 핀다. 올해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개화 시기가 10여 일 정도 빨라졌는데,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는 각각 사월 초순, 10일 전후, 20일경으로 예측하고 있다.

구분에 도움이 되는 건 수피(나무껍질)도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벚나무인데, 수평 물결형이어서 다른 것들과 쉽게 구분된다. 잔가지 모양도 도움이 되는데, 매화와 살구의 잔가지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것들도 있다. 그다음은 잎 모양인데, 유심히 살피면 무엇이 열릴지 가늠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위에 언급한 것들을 사진으로 간단히 요약 소개한다.

매화는 종류에 따라 꽃색도 조금씩 다르다.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순

매화는 종류에 따라 꽃색도 조금씩 다르다.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순


각각 벚꽃, 살구꽃, 복사꽃. 이것들은 모두 흰색으로 변하여 진다

각각 벚꽃, 살구꽃, 복사꽃. 이것들은 모두 흰색으로 변하여 진다


사과꽃, 모과꽃, 배꽃

사과꽃                                                                                                      모과꽃                                                                                                               배꽃


같은 나무에서 벚꽃이 피는 모습. 몽우리 단계에서부터 활짝 필 때까지 보통 3~5일이 걸린다

같은 나무에서 벚꽃이 피는 모습. 몽우리 단계에서부터 활짝 필 때까지 보통 3~5일이 걸린다


수피(나무껍질)로도 구분된다. 각각 벚꽃, 모과, 복숭아. 벚꽃은 수평 물결형, 모과는 버짐이, 복숭아는 물집 모양이 특징적이다.

수피(나무껍질)로도 구분된다. 각각 벚꽃, 모과, 복숭아. 벚꽃은 수평 물결형, 모과는 버짐이, 복숭아는 물집 모양이 특징적이다.


각각 매화, 살구, 자두나무의 수피들. 매화와 살구의 잔가지 중 일부는 가시처럼 날카롭다. 상처난 자두 수피에서는 진액이 나와 벌레들이 꼬이기도 한다. 과실수들의 수피는 늙으면 모두 불규칙 파쇄형으로 갈라진다. 자두 역시 마찬가지.

각각 매화, 살구, 자두나무의 수피들. 매화와 살구의 잔가지 중 일부는 가시처럼 날카롭다. 상처난 자두 수피에서는 진액이 나와 벌레들이 꼬이기도 한다.
과실수들의 수피는 늙으면 모두 불규칙 파쇄형으로 갈라진다. 자두 역시 마찬가지.


배나무
복숭아나무

잎 모양도 구분에 도움이 된다. 왼쪽은 동그란 편인 배나무, 오른쪽은 바소꼴의 복숭아나무.

일본엔 국화(國花)가 없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화(國花)로도 잘못 알려져 괜히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입싸움도 벌어지는 벚꽃(‘사꾸라’) 이야기를 하자. 한마디로 일본엔 국화가 없고, 왕실 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꽃만 있다. 꽃잎이 16장인 대국(大菊)을 위에서 본 모양인데, 일본 동전에 자주 쓰이고 있다[사진].

일본 왕실 문양인 국화(국화)
이 국화를 옆에서 본 모습(일본 동전)

좌: 일본 왕실 문양인 국화(菊花). 우: 이 국화를 옆에서 본 모습(일본 동전)


각각 고종의 어차에 번호판 대신 왕실 문양
이화여고 교표인 배꽃

각각 고종의 어차에 번호판 대신 왕실 문양. 이화여고 교표인 배꽃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새로워지고 넓어진다. 그 출발은 자세히 보기다. 풀꽃 시인 나태주는 이렇게 읊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끝>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