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008년의 조성 계획 수립 후로 14년 동안 공을 들여 온 율곡수목원이 전면 개장했다. 율곡수목원에는 멋진 성과물들이 많이 담겨 있지만, 그중 숨은 보물 1호로 꼽히고도 남을 것은 단연 미선나무 군락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초 군락을 빼고도.

파주가 자랑해도 좋을 매우 소중한 식물 자산이다. 그 미선나무가 요즘 활짝 피어나 꽃바다를 일군 채 상춘객들에게 장관을 선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가치에 걸맞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이 미선나무가 실물을 대하기가 무척 어려워서 마치 동화 속의 나무처럼 이름으로만 익숙해 온 존재라서다. 그 미선나무의 앞뒤 얘기를 살펴보는 일은 그러므로 제값을 쳐주는 일도 된다.

율곡수목원 분수 주변 미선나무 군락

율곡수목원 분수 주변으로 미선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전 세계 유일한 1속 1종의 한국 특산 천연기념물의 최대 인공 군락지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미선나무는 1속 1종의 귀한 몸이다. 즉, 미선나무속 미선나무종으로 한국에만 자생하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일찍이 천연기념물(14호)로 지정돼 온 이유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진천군 초평리의 미선나무는 손을 많이 타서 자생지가 전부 훼손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 뒤로 여러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최초의 천연기념물은 해제되었지만, 현재는 괴산의 3곳과 영동, 부안의 각각 1곳 등 다섯 곳의 자생지들이 천연기념물[각각 147호, 220호, 221호, 364호, 370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한 미선나무는 50여 년 전의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계속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 특산이자 천연기념물이지만, 그 실물은 널리 소개되지 못한 채 이름만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실물을 접할 기회가 적은 탓이 가장 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선나무는 식물 명으로만 유명한, 동화 속의 나무와도 같았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 나간 미선나무들은 대우가 달랐다. 개나리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도 개나리와 흡사하지만 꽃이 새하얀 흰색이어서 영어로는 '흰개나리(white forsythia)'라 불리면서 실질적인 사랑을 받았다. 관상수는 물론이고 조경수로도 앞다투어 심었다. 가장 큰 이유는 꽃색도 있지만 향기가 거의 없는 개나리와 달리 향내를 풍기기 때문이다. 짙지는 않지만 고상한 향내가 무척 은근하고 오래간다.

게다가 개나리와 달리 꽃이 지면 맺히는 열매 모양이 독특해서 기특한 녀석이기도 하다. 열매가 마치 임금님 뒤에서 시녀들이 들고 있는 꼬리가 동그란 부채처럼 생겼는데, ‘미선(尾扇)’이란 이름은 바로 그 모양에서 나왔다. 미선나무는 고아한 흰색과 향내, 그리고 이 독특한 열매 모양만으로도 특급 대우를 받을 만하다.

미선나무 꽃

미선나무 꽃

미선나무 입과 열매

미선나무 입과 열매

율곡수목원의 미선나무 군락이 귀하고 소중한, 숨은 보물 1호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국내에서 조성된 인공 군락지로는 최대 규모라서다. 현재 미선나무 천연기념물은 자생지 기준으로 지정돼 있는데 개체 수와 분포 면에서는 마지막으로 지정된 부안(370호)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개천가를 따라 여기저기로 나뉘어 분포돼 있어서 개체 수는 몇백 그루에 불과하다. 율곡수목원에 조성된 미선나무는 개체 수에서 그 규모를 넘기고 있고, 지금도 계속 번지고 있다. (미선나무는 자생적인 뿌리줄기 번짐으로 계속 확산할 수 있다.) 다만 자생지가 아니라 인공 식재여서 천연기념물에는 들지 못한다.

봄철에 심으면 딱 좋은 미선나무, 어디서 어떻게 구하나

미선나무는 이처럼 계보상의 신분은 높지만, 실제 삶의 모습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습하고 비옥한 땅은 도리어 좋지 않다), 번식도 아주 쉽다. 2년생의 가지/줄기를 15cm 정도로 잘라 잔모래에 꺾꽂이를 해주면 된다. 그 덕분에 현재는 이 미선나무를 길러 파는 묘목장도 흔해져서 묘목을 구하기가 손쉽다. 새 집을 지어 옮겨가는 지인들에게 내가 그런 귀띔을 해주어 묘목들을 사다가 심은 이들도 적지 않게 늘었다.

기자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열리고 있는 파주와 고양의 나무시장에는 갖다 놓은 것이 없다. 일반인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길은 K, D, M 등의 대형 원예종묘사나 쇼핑몰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1~4그루를 묶어 파는데, 가능하면 2그루 이상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홀로 서는 힘이 약한(줄기가 갸녀린) 관목이어서 서로 받침대가 되도록 해주는 것이 수형 관리에도 좋고, 한 무더기쯤이 되어야 꽃이 피어도 잘 어울린다. 요즘에는 기본종인 흰색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신품종으로 꽃색이나 꽃받침이 다른 것(분홍미선/상아미선/푸른미선/둥근미선)이나 꽃 모양이 다른 것(꼬리별미선)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구매해도 좋다.

미선나무 꽃을 구경하는 방문객들

미선나무 꽃을 구경하는 방문객들

요즘 꽃철을 맞아 율곡수목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주차장이 꽤 너른 편인데도 방문객들의 차량으로 거의 만원이다. 단란함이 저절로 묻어나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주력 부대지만, 간간이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미선나무 꽃들은 이달 말 안으로 가면 볼 수 있다.

그밖에 율곡수목원에서 자생하는 식물들

율곡수목원에는 히어리도 있다​. 히어리라는 이름만으로는 마치 외래종인 듯싶지만, 이 또한 한국 특산의 자생종으로 사진에서 보듯 앙증맞은 노란색 꽃이 아름답게 매달린다. 미선나무처럼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는데, 이 히어리도 율곡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다. 이 히어리 또한 조록나무과 히어리속 히어리종으로 1속 1종이다. 처음에는 전남 광양에서 발견되었지만, 현재로는 중부 이북 지역에까지 분포하고 있어서, 2012년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하지만 국외반출 승인 대상종으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히어리는 제대로 자라면 2~4미터에 이르는데, 율곡수목원의 녀석들은 아직 어려서, 높이에서는 좀 빠진다. 그러다 보니,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사모정 삼거리 길에서 침엽수림 쪽으로 150m쯤 가면 왼쪽에 녀석들이 무더기로 있다. 나무들이 어려서 꽃도 작으므로 잘 살펴야 보인다. 언젠가 제 높이로 자라면 충분히 이목을 끌 만한 녀석들이다.

그 밖에도 율곡수목원을 찬찬이 챙겨서 돌아보면 귀한 녀석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대하게 되는 황금회화나무에서부터 중간의 미선나무 군락, 그리고 침엽수림만 해도 황금삼나무, 처진솔송나무 등과 같은 흔치 않는 귀족 나무들을 대할 수 있다.

히어리 군락

히어리 군락

처진 솔송나무

처진 솔송나무

황금삼나무

황금삼나무

황금회화나무

황금회화나무

봄철 나들이는 덤으로 얻는 게 참 많다. 맑은 공기와 고개를 잔뜩 젖혀야 다 담을 수 있는 파란 하늘은 좁은 곳에 갇혀 지내는 사이에 쪼그라든 마음까지도 후련하게 풀어주고, 푸른 잔디와 새잎을 내는 나무들은 저절로 시력 마사지를 해준다. 함께하는 이와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들에서도 새싹이 돋는다. 거기에 식물들과 나누는 대화까지 얹혀지면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생기가 돋는다. 동요 아기 염소의 마지막 구절, ‘신나는 아기 염소들’을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율곡수목원
- 위치 : 파주시 파평면 장승배기로 392
- 연락처 : 031-952-0624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