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는 1968년 1월, 고랑포를 건넜던 북한 124군 부대의 운명이다. 개성에서 출발한 김신조 등 31명의 침투조는 고랑포를 건넌 다음, 장좌리와 답곡리의 국사봉 서쪽 기슭을 지나 파평산, 비학산, 노고산, 팔일봉, 고령산, 북한산 비봉을 거쳐 청와대 후문으로 달려갔다. 당초의 침투목적은 실패했고, 총격전 끝에 대부분 사살되었다. 그들의 유해는 고랑포 도하지점으로 되돌아와 답곡리 북한군 묘지에 묻혀서 북쪽 고향 바라기를 하게 되었다.
그들의 도하지점에는 ‘침투지점 비’가 서 있고, 장좌리의 임진강 변에는 ‘민통선 경계 철문’이 스산하게 늘어서 있다. 홀로 살아남은 김신조 소위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세웠던 처음의 침투계획은 얼어붙은 임진나루 도하였다. 그러나 바닷물이 얼음판을 뒤집어놓은 탓에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곳, 남과 북에서 국사봉과 호로고루성이 지켜보는 고랑포로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
봄빛이 완연하다. 가족과 함께 나서는 봄나들이로 국사봉 주변을 돌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 취재 : 강병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