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리에서 바라본 박달산

분수리에서 바라본 박달산

파주 박달산은 광탄면행정복지센터 인근 신산터널에서부터 남동쪽으로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며 유순하게 뻗어간다. 나지막한 산을 길게 펼쳐 놓고 슬슬 올라가다가 정상을 찍은 다음엔, 고령산에서 흘러내린 우암산으로 건너뛸 듯싶더니 턱밑에서 멈춰 선다. 온 가족이 손잡고 걷다가 언제든 돌아서도 좋은 산책길 4,300m인 셈이다.

신산터널 앞 등산로 입구

신산터널 앞 등산로 입구

광탄면행정복지센터 등산로 합류지점

광탄면행정복지센터 등산로 합류지점

박달산 첫 방문은 8월 17일 늦은 오후였다. 신산터널에서 시작된 등산로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광탄면행정복지센터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했고, 1시간을 채우기 전에 전망대에 닿았다. 마을 뒷산 둘레길 버금가게 완만했건만, 여름 끝머리의 더위는 숨길을 턱턱 막았다. 전망대로 올라가 모자를 벗고 바람을 쐬려는데, 말벌 한 마리가 천장에서 맴을 돌았다. 수건을 휘둘렀더니 사라지더니, 금세 동료 셋을 데리고 돌아왔다. 말벌 네 마리의 편대비행 기세는 사나웠다. 전망대 아래로 곤두박질, 쫓겨날 수밖에.
내친 김에 잰걸음을 놓긴 했으나 해 지기 전에 정상까지 다녀오는 건 무리였다. 눈앞에 나타난 정토사 가는 길로 들어섰다. 예전 등산지도에 나와 있던 용마사는 4년 전에 소실되었고, 샌드위치패널 가건물에 부처를 모신 정토사는 아직 사찰의 위엄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신산터널까지는 지름길이 뚫려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은 8월 20일이었다. 박달산 정상에 오르는 최단거리 등산로였는데, 정토사 인근의 유아이엘(전자제품 제조) 사옥을 관통하도록 되어 있었다. 과감하게 비포장도로로 차를 몰아넣었더니, 주차할 곳은 충분했다.
등산로 지도에 따르면 거기서 정상까지는 1시간이 소요되었다. 신호(神虎)약수 갈림길까지 30분은 비포장도로가 이어졌으나, 빗물에 패어 튀어나온 바위와 돌이 날카로워 걷는 게 훨씬 편했다. 신호약수 갈림길에서부터 정상까지 30분은 제법 실감이 나는 가풀막이었다.
신호약수는 갈림길 오른쪽 나무다리 건너 80m쯤에 있었다. 지붕이 있는 쉼터까지 갖추긴 했지만,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탓에 약수 맛을 볼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는 약수터 뒤로 올라가는 철계단을 통해 능선길과 합류할 수도 있었다.

박달산 정상

박달산 정상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박달산 정상. 광탄산악회가 세운 정상표지석에 새긴 숫자는 370m이었다. 즉석에서 확인한 인터넷 지도에는 363m였다. 왜 7m가 더 필요했는지, 궁금했다.
정상표지석 뒤로는 고령산 앵무봉(622m)이, 북으로는 감악산(674m)이, 동남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둘러섰다. 편평한 헬리포트를 에둘러 둥그렇게 앉힌 난간에는, 방향에 따라 용암사마애이불입상, 혜음원지, 소령원, 보광사대웅전, 윤관장군묘의 사진과 해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장소에 걸맞은 재치 있는 행정이 돋보였다.
내려가는 길은 신산터널로 뻗은 능선길로 내려섰다가 오른쪽 신호약수 갈림길로 빠졌다. 약수터 앞에는 반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잣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있고, 설익은 잣송이 발라낸 흔적이 즐비했다. 남은 길은 빠른 걸음으로 미끄러져 체력단련장에 도착했다. 총 2시간이 소요되었다.

박달산 정상에서 보이는 북한산

박달산 정상에서 보이는 북한산

정상에 있는 문화재 안내판

정상에 있는 문화재 안내판

세 번째 방문은 8월 28일, 토요일이었다. 78번국도를 따라 혜음령으로 향하다가 윤관장군묘를 지나자마자 왼쪽 장지산로로 접어들었다. 용미리의 달구니 마을을 저만치 앞에 두고 분수리의 ‘춘배농장’ 마을버스정류장 표지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분수2리 느티나무’는 백년도 넘었음직했다. 그 아래 평상에서 쉬고 있던 마을사람에게 근창약수터 가는 길을 물었다.
“느티나무를 이렇게 휘감고 돌아서 저쪽으로 올라가다가 중간에 차를 세우고, 한참 더 올라가면 나오는데요.”
꾸밈없는 말투에서, 뜬금없이 달구니와 분수리 마을에 얽힌 전설이 주르르 떠올랐다.
“영조의 사친 숙빈최씨의 장례를 소령원에 모시기 위해 가던 중 거기에 이르러 닭이 울었기 때문에 ‘닭운리’라고 했다가 ‘달구니’가 되었고요. 박달산과 우암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달구니에서 장지산 왼쪽으로 흐르면 공릉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문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분수리(分水里)’가 되었다데요.”
그 옛날에는 됫박고개 넘는 지름길이 아직 뚫리지 않았으므로, 숙빈최씨의 영구 행렬이 혜음령을 넘은 다음 용미리의 달구니를 지나고 박달산을 에돌아서 소령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어떨 때는 전설이 사라진 지리를 되살리기도 하는 게 신기했다.

근창 약수터

근창 약수터

근창약수터는 숲을 가르고 달려간 비포장도로 곁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지붕이 있는 쉼터뿐 아니라 운동기구 몇 가지와 의자까지 놓였다. 8월의 검사결과 ‘적합’ 표지도 붙어 있어서, 신호약수터보다는 관리가 잘되고 있었다.
올여름처럼 비가 흔한 때도 없으련만, 약수는 귀한 법이던가. 졸졸졸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물 한 종지를 받아 마시고, 울퉁불퉁 패이고 깎인 산길로 올라섰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잘생긴 소나무 아래로 꼬리를 감추며 숨어들었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덕분에 숲 그늘은 시원했건만, 모기떼의 파상공세는 극성스러웠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날것들이 소리 없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팔뚝이며 얼굴이며 귓바퀴까지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굳이 정상에 오르자는 목표가 아니었으므로, 능선까지만 갔다가 신호약수 갈림길에서 돌아섰다. 왕복 1시간 경과.

박달산 등산로

네 번째 방문은 9월 3일 이른 아침이었다. 차를 광탄면행정복지센터에 세워두고 정상까지 4,300m를 터벅터벅 걸었다. 굽은 소나무와 곧은 참나무 둥치를 헤아리기도 하고, 빗물에 씻겨 내려온 도토리를 잘못 밟아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2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도 시간이 남았다. 우암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살피고 걸어볼 욕심에 1,000m쯤 비탈길을 내려갔다. 훤하게 뚫린 등산로는, 해발 329m의 나지막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우암산을 함께 걷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는 증거였다.
이번엔 중간에 돌아서고 말았다. 자전거 라이딩에 나선 세 쌍의 젊은이가 쌩하고 스치는가 싶더니, 우암산으로 건너갔던 것. 신산터널에서부터 박달산 정상까지 4,300m, 우암산 등산로 입구까지 2,700m, 능선길로 혜음령까지 5,000m. 도합 12,000m에 이르는 험하고 사나운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젊음이라니. 이유 없이 흥이 깨졌다 할까, 아니면 흘러간 세월이 아쉽다 할까. 1시간을 허송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은 퍽 울적했다.

신산(新山)터널로 내려가는 숲길에서 떠오르고 스러지는 상념들은 착잡하고 신산(辛酸)했다. 그래도 하늘은 쾌청, 공기는 상쾌했다. 남은 시간을 뜻있게 아껴 살아야겠다는 다짐만을 거듭했다. 산행에는 총 5시간이 소요되었다

취재 : 강병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