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관차 얘기.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지나간 것들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개인사에서부터 사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들이 그렇다. 지나간 것들이라 해서 그냥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 의미를 그냥 흘려보내는 이와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이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안도현의 성인용 동화책 <증기기관차 미카>가 단적인 예다.
초등생 아들을 데리고 의왕의 철도박물관을 찾은 어느 엄마의 글을 읽다가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아들이 미카 기관차를 보고는 “엄마. 나 저거 알아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여객 열차를 끌었던 증기기관차가 미카여요. 울 집에 <증기기관차 미카>라는 동화책도 있잖아요.”라고 해서다. 세상에... 어떻게 초등생이 그걸, 게다가 ‘미카’라는 이름까지도 알다니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증기기관차 이름이 초등생 교과서에도 나오고 있었고 안도현의 성인용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라는 책까지 나와 있었다.
윌리암 워즈워즈가 그의 시 <무지개> 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한 대목이 그 아이를 통해서도 무지개처럼 살아나고 있었다. 아이를 통한 뜻깊은 되새김질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우리는 시속 300km를 넘기는 고속열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고속열차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국가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열 손가락도 되지 못한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전 세계 철도 역사를 열어온 영국조차도 고속철도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흘러간 전투기 이야기에서도 배울 건 있다: 퇴역한 F-4D 팬텀기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오른쪽 입구 편에는 전투기 한 대가 즉시 하늘로 떠오를 자세로 전시돼 있다.
영공 수호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한 F-4D 팬텀기다.
퇴역한 F-4D 팬텀기
팬텀기는 서양의 도깨비를 뜻하는 phantom에서 따왔는데, 꽁무니 모양이 독특하게도 눈이 큰 서양의 유령 도깨비와 닮아서였다.
팬텀기의 꽁무니. 눈이 큰 서양 도깨비를 닮았다
이 팬텀기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겐 매우 각별한 존재다. 1969년 이래 55년간 가장 오래 우리 영공을 지켜 온 주력기로, 지금까지 운용해 온 전투기의 2/3 이상을 이 기종이 차지했다[F-4D 92대, F-4E 103대, RF-4C 27대로 총 222대]. 이름은 전투기지만 폭격 기능도 수행했을 정도로 8톤 이상의 중무장을 하고 최초의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했기 때문에 이 팬텀기가 뜨면 북쪽에서는 아예 전투기를 띄우지 못했다. [현재의 최신형 최대 중무장기인 F-35A형의 8,160kg보다도 더 많은 8,480㎏를 탑재했다. 그래서 전투기의 표지인 F(Fighter)를 달고 있지만 '전폭기'로 불린다.]
또 다른 사연도 있다. 1969년 남북의 대치가 극한 상황일 때 부족한 국방 예산을 메우기 위해 시행했던 방위성금 모금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163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헌금했고, 그중 71억 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거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 '필승편대'였고 기체에는 ‘방위성금헌납기’라고 적어서 구별했다.
1983년 북한의 이웅평 대위(1954~2002. 대한민국 공군 대령으로 예편)가 미그-19를 몰고 서해안으로 귀순했을 때 출격하여 북한 측의 위협 비행을 차단한 것도 바로 팬텀기였다. 팬텀기가 나타나자 북한 전투기는 상대가 안 될 것을 뻔히 알기에 즉시 꼬리를 뺐다고 한다.
F-4D 팬텀. 방위성금헌납기
1983년 서해상으로 귀순하고 있는 미그19기(앞쪽)를 호위 중인 팬텀기
우리나라는 우리가 자체 생산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비행기들이 있다. 초음속 비행연습기 T-50과 이를 모태로 삼아 경공격기로 개발한 FA-50 ‘파이팅 이글’, 그리고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수준에까지 오른 것은 1986년 KF-16을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하면서다. 미국의 F-16 을 라이선스로 조립 생산하면서부터 기술 축적과 부품 자급율이 높아졌고(40% 이하에서 59%로), 그것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초음속기 생산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KF-21은 진정한 최초의 국산 전투기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국산화 비율은 65%지만 80%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팬텀기는 우리의 공군사에서 가장 굵고 깊게, 그리고 최장 기간을 기록한 기종이다. F-4D와 RF-4C는 이미 퇴역한 지 오래고 F-4E도 순차적인 퇴역을 거쳐 현재 10여 대 정도만 남아 있는데, 지난 6월 7일 퇴역식을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모두 현역에서 물러났다. 퇴역 후에는 각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 시 디코이(미끼)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팬텀기의 활약상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5월 9일 특별한 고별 비행이 있었다. 팬텀기가 편대를 이루어 중간 휴식을 포함하여 5시간에 걸친 국토 순례 비행을 했는데, 그중 한 대는 1969년 당시의 정글 무늬 도색을 했고 나머지 기체들에는 이별 문구, 곧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를 새겼다.
고별 비행을 앞두고 기체 옆구리에 새긴 글씨,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
고별 비행 국토 순례 중인 필승편대. 맨 위쪽의 것이 방위성금으로 구입된 팬텀기의 최초 외관 도장(정글 무늬)으로 고별 비행을 위해 복원한 것
현재 파주의 평화누리공원에 전시돼 있는 팬텀기의 정확한 족보는 F-4D-31-MC66-7753으로 F-4D 도입순으로는 61호다. 이 F-4D 팬텀기는 퇴역 후 전국 도처에 전시돼 있는데 공원으로는 다음의 8곳이 있다. 괄호 안은 공원 이름: 서울(보라매), 천안(태조산), 군산(진포), 강릉(통일), 구미(동락), 대전(보라매), 포항(몰개월), 문경(모전).
실은 파주에 이 팬텀기가 한 대 더 있다. 서울호서직업전문대 파주캠퍼스의 본관과 잔디마당 사이, 주차장 한 쪽 끝쪽에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F-4D 15호기로 도입순에서는 평화누리공원의 것보다 고참이다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F-4D 팬텀기
지나간 것들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역사는 역사를 먹고 성장한다. 지나간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춰서서 그 앞뒤의 의미를 곰곰 되새겨 보는 일은 역사의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개인사와 사회사 모두에... 역사가 산타야나는 말했다. ‘발전은 변화가 아니라 기억에 달려 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고. 이 말을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이들은 미래가 순탄치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토머스 제퍼슨도 거들었다.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알려주어 그들이 미래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우리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 앞에서 잠시라도 앞섶을 여며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말들이 아닐까 싶다. <끝>
[취재] 파주알리미 최종희